[유물로 읽는 경기도②] 조선의 세계관을 바꾼 한 장의 지도, 곤여만국전도

김필국 2026. 6. 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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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단순히 지형을 기호나 수치로 표시한 그림이 아니다.

특히 조선 전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그보다 약 200년 뒤 조선에 전해진 '곤여만국전도'는 조선 지식인들의 시야가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곤여만국전도'의 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조선에 전래된 초기 세계지도 자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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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에 소장중인 곤여만국전도 복원본. 실학박물관

지도는 단순히 지형을 기호나 수치로 표시한 그림이 아니다. 지도에는 땅의 모습뿐 아니라, 한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았던 방식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지도는 땅의 기록이자,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실학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실학과 과학을 주제로 한 유물들이 다수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천문과 지도 관련 유물은 조선 지식인들이 지녔던 세계관과 우주관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특히 조선 전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그보다 약 200년 뒤 조선에 전해진 '곤여만국전도'는 조선 지식인들의 시야가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402년에 제작된 동양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중 하나다. 이 지도에서 중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관념 아래, 세계의 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배열돼 있다고 여겼던 시대의 인식이 지도에 드러난 것이다.

반면 '곤여만국전도'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지도는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리치와 명나라 학자 이지조가 함께 제작한 서양식 지도로, 조선에 전해진 최초의 서양식 세계지도다. 이후 1708년, 숙종의 명에 따라 이국췌와 유우창이 당대의 화가 김진여와 함께 이를 8폭 병풍 형식의 타원형 세계지도로 모사했다.

'곤여만국전도'의 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조선에 전래된 초기 세계지도 자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다만 훼손이 심해 전체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 실학박물관이 2011년 서울대학교 소장 8폭 병풍을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에 현존하는 관련 지도를 참고해 가능한 한 완전히 복원했다.

'곤여만국전도'의 가장 큰 의미는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꿨다는 데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대지구체설을 바탕으로 5대양과 6대주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중국 밖에도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인식은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어느 한 나라만이 세계의 중심일 수 없으며, 세상은 훨씬 넓고 다층적이라는 새로운 시야가 열린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구', '경위선', '적도', '회귀선'과 같은 용어가 한자로 표기돼 동아시아 지식 세계에 전해진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도 한 장이 단순한 지리 정보 전달을 넘어, 새로운 지식 체계와 사유 방식을 함께 실어 나른 셈이다.

결국 '곤여만국전도'의 핵심 가치는 조선 지식인들의 눈을 더 넓은 세계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 조선 초기의 중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깨달음, 그리고 우리 역시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다는 인식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 중요한 지적 자극이 됐다.

한 장의 지도는 때로 한 시대의 시야를 바꾼다. '곤여만국전도'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줬고, 실학의 정신에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세계는 넓고, 우리는 그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전시실에서 '곤여만국전도'를 마주하며, 그 오래된 지도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을 다시 곱씹어본다.

김필국 실학박물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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