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센터코트보다 아이 등하교"…앤디 머리가 말한 은퇴 후 행복

김종석 기자 2026. 6. 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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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켓 내려놓은 뒤 “테니스가 그립지 않다”라는 뜻밖의 고백
- 드레이퍼 코칭도 가족과 떨어지지 않는 조건에서 수락
- 전자라인콜 확대엔 “정확하지만, 관중 경험은 줄 수 있다” 문제 제기
-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삶의 균형
앤디 머리는 잭 드레이퍼의 코치를 하면서도 가족을 중시하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가디언 홈페이지

앤디 머리(39·영국)는 더 이상 센터코트의 함성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두 차례 윔블던을 제패했고,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으며, 영국 남자 테니스의 오랜 갈증을 풀어준 선수입니다. 한때 그는 영국 스포츠가 짊어진 기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텼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받고도 코트로 돌아왔고, 통증 속에서도 라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머리가 29일 개막하는 윔블던을 앞두고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테니스가 그립지 않다"라는 취지였습니다. 은퇴 선수에게 흔히 따라붙는 말은 "코트가 그립다", "관중 함성이 생각난다"입니다. 머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제 결승전보다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머리는 2015년 4월 킴 시어스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셋과 아들 하나, 모두 네 자녀가 있습니다. 첫째 소피아는 2016년, 둘째 이디는 2017년, 아들 테디는 2019년, 막내딸은 2021년에 태어났습니다. 가족 이야기는 머리에게 새삼스러운 장식이 아닙니다. 그는 과거에도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우승보다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세계 랭킹, 투어 일정, 훈련 계획이 삶을 지배하던 시절을 지나, 가족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에서 더 큰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앤디 머리와 가족. 피플 홈페이지 캡처

머리의 은퇴 후 삶은 세계 정상급 선수가 승부의 세계를 빠져나온 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선수 시절 누구보다 치열했습니다. 영국 언론과 팬들은 그에게 윔블던 우승을 요구했고, 그는 2013년 영국 남자 선수로는 77년 만에 윔블던 정상에 올랐습니다. 영웅이 됐지만, 그 대가는 컸습니다. 부상, 재활, 이동, 압박. 은퇴 후 머리가 느낀 감정은 허전함보다 해방감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잭 드레이퍼(25·영국)를 돕는 일도 조건부였습니다. 머리는 은퇴 후 여러 코칭 제안을 받았지만, 투어를 따라 전 세계를 도는 전업 코치가 되는 데는 관심이 크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내는 생활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드레이퍼를 돕기로 한 것은 두 사람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주로 영국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현실적 조건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머리에게 중요한 기준은 분명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머리의 두 번째 인생이 보입니다. 그는 테니스를 떠난 것이 아니라, 테니스와의 관계를 바꿨습니다. 과거에는 테니스가 삶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드레이퍼에게도 머리는 전통적인 의미의 코치라기보다 멘토에 가깝습니다. 기술 몇 가지를 고쳐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부상과 복귀, 기대와 압박을 모두 겪어본 선배입니다.

 드레이퍼는 영국 테니스가 머리 이후 기대를 거는 대표 선수입니다. 한때 세계 정상권 진입을 바라보다 부상으로 흔들렸고, 다시 몸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하는 시기에 머리를 만났습니다. 머리는 드레이퍼의 경기력보다 먼저 그의 몸과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자신이 끝없이 싸웠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의 조언은 라켓 스윙보다 오래 버티는 법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영국선수로는 77년 만에 윔블던 정상에 선 머리. 

흥미로운 것은 머리가 은퇴 후에도 테니스의 변화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전자라인콜 확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렇습니다. 최근 테니스는 선심을 줄이고 전자 판정 시스템을 넓히는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판정 정확도와 운영 효율성만 놓고 보면 당연한 방향입니다. 오심은 줄고, 불필요한 논란도 줄어듭니다.

 하지만 머리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정확한 테니스가 과연 더 재미있는 테니스인가.

 테니스에서 판정은 단순히 공이 라인 안에 떨어졌는지 밖에 떨어졌는지를 가르는 절차만은 아니었습니다. 선수의 항의, 주심과의 긴장감, 관중의 웅성거림, 챌린지 순간의 정적과 환호도 경기의 일부였습니다. 전자라인콜이 모든 것을 즉시 판단하면 공정성은 올라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내던 드라마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머리의 문제 제기는 기술 반대론이 아닙니다. 스포츠가 정확성을 얻는 대신 무엇을 잃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윔블던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윔블던은 전통을 가장 중시하는 대회이면서도 최근에는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흰색 복장, 잔디 코트, 로열박스의 격식은 남아 있지만 경기 운영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선심 없는 코트, 전자 판정, 비디오 리뷰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고 있습니다. 머리는 바로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은퇴한 세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선수 머리는 이제 없습니다. 대신 아버지 머리, 멘토 머리, 그리고 테니스의 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 머리가 있습니다.

 그가 "테니스가 그립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테니스를 덜 사랑해서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바쳤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제 머리는 승패가 아닌 균형을 말합니다. 센터코트의 함성보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먼저 생각하는 삶. 그것이 한 시대를 버틴 챔피언이 마침내 찾아낸 은퇴 후 행복입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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