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디락스의 지혜

곰 세 마리 오두막의 비밀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어릴 적 누구나 손뼉을 치며 신나게 불렀던 노래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동요의 뿌리는 뜻밖에도 영국의 오래된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이다. 우리가 무심코 흥얼거렸던 이 곰 세 마리의 집이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비밀을 품고 있다.
동화 속 금발 소녀 골디락스는 숲속을 헤매다 주인이 없는 곰들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는 세 그릇의 죽이 차려져 있었다. 소녀는 차례대로 죽을 맛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죽은 너무 뜨거웠고, 두 번째 죽은 너무 차가웠다. 세 번째 죽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배고픈 소녀가 마침내 선택한 것은 적당히 따뜻한 세 번째 죽이었다.
'골디락스(Goldilocks)'는 본래 동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지만, 오늘날에는 이처럼 극단을 피한 가장 이상적인 균형 상태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경제학에서 경기가 너무 과열되거나 너무 침체되지도 않은 딱 알맞은 황금기를 일컬어 '골디락스 경제'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적당한 균형의 지혜를 가만히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의 교육과 사회를 본다. 과연 우리는 그 적당한 온도의 죽처럼 삶의 가장 아름다운 균형과 상식을 잘 지켜내고 있을까.
제주 삼춘들의 수눌음
제주의 옛 부모님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 오래된 유산인 '수눌음'을 앞서 말한 골디락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바쁜 철마다 이웃집 삼춘네 밭으로 가 종일 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도왔다. 며칠 뒤면 그 삼춘 또한 어김없이 우리집 밭을 찾아와 당신의 일처럼 온 정성을 다해 일손을 보탰다. 그것은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형편을 헤아리며 오고 가던 정겨운 품앗이었다.
이 품앗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균형의 법칙이 숨어 있다. 내 일처럼 돕되 상대의 농사를 통째로 대신 지어주는 지나침(뜨거운 죽)도 없었고, 남의 집 농번기를 모른 척하는 인색함(차가운 죽)도 없었다. 제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서로의 밭을 오가며 적당한 손길을 교환했다. 나는 여기에서 서로의 자립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던 영리한 균형을 본다.
생각해보면 이 수눌음이야말로 마을공동체가 오래 공존할 수 있도록 돕는 '마중물'이었던 셈이다. 메마른 펌프에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붓는 딱 한 바가지의 물처럼, 수눌음은 이웃이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만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죽처럼 말이다
마중물 한 바가지
이 수눌음의 이치는 교육적 관점에서도 '마중물 교육'과 그 결이 같다. 펌프가 터질 때까지 양동이 채로 물을 퍼붓는 '과잉 친절'은 펌프를 망가뜨린다. 반대로 물을 전혀 주지 않는 '인색함'은 펌프를 메마르게 한다. 옛 제주의 어른들이 수눌음이라는 딱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서로의 자생력을 자극했듯, 교육 역시 그 알맞은 온도를 품어야 한다
자녀를 향한 깊은 사랑이 때로는 아이가 마주해야 할 삶의 과정을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내야 할 영역까지 주변의 과도한 손길이 모두 지원하고 대신해 주는 교육은, 오히려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할 기회를 가로막기 쉽다.
진정한 교육은 수눌음처럼, 마중물처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펌프질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의존을 만들지 않는 적당한 온도의 환경을 제공하고, 아이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묵묵히 기다려주는 일이다.
골디락스의 지혜로 나누는 수눌음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이 알맞은 균형을 지켜내기가 참 쉽지 않다. 본래 삶을 배우고 나누는 자리란 아이와 부모, 교사, 그리고 이웃이 다 함께 채워가는 커다란 마당이어야 한다. 이 마당에서 서로가 딱 필요한 만큼 건강한 보탬이 되어줄 때, 우리의 삶과 사유도 비로소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상식은 바로 이 따뜻한 연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옛 제주의 부모님들이 이웃의 일손을 보고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듯, 이제 우리에게도 서로의 성장을 다 함께 거드는 다정한 시선이 머물기를 바란다.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뜨겁게 간섭해 스스로 설 기회를 차단하지 않는 것. 반대로 너무 차갑게 무관심으로 방치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서로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마중물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가장 상식적이고 최적화된 공동체의 모습이다
골디락스가 선택했던 그 '따뜻한 죽' 한 그릇을 수눌음처럼 사이좋게 나누는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제주 서귀포 출생으로 제주대에서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등 교사, 장학사, 중학교 교감 등을 거쳐 현재 서귀포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167개국이 참여한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에서 '제주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라는 강연으로 4.3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단독 저서로 《4·3이 나에게 건넨 말》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제주역사》, 《새로운 교육과정에 담은 세계시민교육》, 《문화 다양성의 이해》, 《온 세상이 사회교과서》를 공동 집필했다. 현재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제주지부장을 맡아 전국 중등학교 및 교육 현장 교류를 통해 회복적 학교문화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