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변호해온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

임지영 기자 2026. 6. 2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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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해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사이 대구에서 홍준표 당시 시장이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한 사건이 있었고, 함께 활동하던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알지만, 실제로 그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구체적으로 이해할 기회는 여전히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는데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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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희라는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커밍아웃 당시이고, 두 번째는 2020년 ‘숙명여대 입학생 사건’ 때였다.
6월8일 박한희 변호사가 서울 마포구 ‘무지개행동’ 인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사진 촬영을 위해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기자가 숨을 헐떡이는 동안 앞장선 박한희 변호사는 숨찬 기색 없이 계단을 올랐다. 전날 전북 군산에서 열린 인라인 마라톤대회에서 11㎞를 질주한 그는 평소 헬스장에 다니고 등산도 즐긴다. 연초에는 산악회에서 한라산도 다녀왔다. 날이 흐려 백록담을 보지 못하고 하산하던 길, 한 산악회 회원이 제안했다. “사우나나 갈까?” 추운 날씨에 자연스러운 아이디어였지만, 박 변호사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못 가는데 어떡하지. 이유를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은데….’ 인구 약 0.5~1%는 그와 비슷한 이유로 화장실과 목욕탕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인권활동가. 지난 9년 동안 박한희 변호사를 수식해온 말이다. 2017년 ‘롤모델이 될 수 있는 트랜스젠더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한 청소년의 절박한 글을 읽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그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에서 활동하며 성소수자 인권과 집회의 자유와 관련된 사건을 맡아왔다. 현재 박 변호사는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커밍아웃 당시이고, 두 번째는 2020년 숙명여대에서 트랜스젠더 입학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다. 당사자가 박한희 변호사를 보며 법대 진학을 꿈꿨다고 밝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일부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입학을 포기했지만 당시 사건은 박 변호사에게 과제를 남겼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즈음이다. 최근 출간된 〈무지개를 변호하다–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과 생각〉에서 그는 성별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학창 시절부터 질풍노도의 대학 생활, 직장을 다니며 이중생활을 하다 로스쿨 진학과 커밍아웃을 계기로 활동가의 길에 접어든 여정을 담담히 들려준다. 개인의 경험을 넘어 한국 사회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조명하기도 한다.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로서 마주해온 현장과 싸움의 과정에서 얻어낸 ‘승리’의 경험도 나눈다. 그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료하다. ‘트랜스젠더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마포구 무지개행동 사무실에서 박한희 변호사를 만났다.

‘숙명여대 사건’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벌써 6년이 흘렀는데.

그때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사이 대구에서 홍준표 당시 시장이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한 사건이 있었고, 함께 활동하던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알지만, 실제로 그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구체적으로 이해할 기회는 여전히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쓰게 됐다.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어른 트랜스젠더를 만나보고 싶다는 청소년의 외침 때문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내가 중학생 때 인터넷을 통해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처음 알고 당사자의 삶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고립되고 힘든 모습뿐, 그 밖의 삶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를 감춰야겠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 청소년의 글을 발견한 게 2017년이니까 내 청소년기에서 2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는데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안타까웠다.

2024년 6월1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에서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숙명여대 사건 당시 트랜스젠더의 입학 반대 여론을 두고 ‘무조건 혐오라 퉁치지 말고 들어보자’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야 설득이 안 되겠지만 양극단 사이에도 사람들이 있다. 어떤 불안감과 낯선 감정을 지닌 사람에게 곧바로 ‘혐오’라는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반발심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난보다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반대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싶었다.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적어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면과 자원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당사자들은 훨씬 큰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겠구나’ ‘내가 바라는 삶은 불가능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깨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랜스젠더로서 정체화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고통과 괴로움이 모든 순간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랜스젠더의 서사가 단순화되어 얘기되는 면이 있다. 어릴 때 힘들고 차별받고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트랜지션(지정 성별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하고 나서 이전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서사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않나. 아무리 과거를 부정해도 과거의 경험과 이념과 기억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전형적인 서사 안에서는 당사자가 굉장히 납작하게 이해된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고 트랜스젠더는 더 복합적인 존재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게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 포스텍에 진학했다.

대학교 때 본격적으로 성별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고 꽤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희망이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연구자가 되려면 박사과정을 밟고 오래 공부해야 하는데 목표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나중에 취업을 준비할 때도 ‘5년 뒤, 1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라’는 지원서 항목을 채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모르겠더라.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에 입사했다.

세상에 태어난 최소한의 의미를 찾고 싶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는데.

학교에 다닐 때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서울로 와 회사에 다니면서는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바에 갔다.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여전히 커밍아웃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중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원해서 간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주중의 삶도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학한 로스쿨에서 ‘SOGI(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희망법을 만났다.

그렇게 인권운동에 첫발을 디뎠다. 그 전에는 사회운동을 전혀 안 했다. 퀴어퍼레이드에도 간 적이 없었다. 혹시 가서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했다. 2014년 처음 가서 다른 형태의 당사자를 만났다. 이전에 바에서 만난 분들은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삶이 좀 고정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거기서 청소년과 대학생 트랜스젠더를 만나면서 여러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커밍아웃을 하면 기존 인연이 다 끊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부모에게도 커밍아웃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로스쿨 지인들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한 다음 부모에게 알렸다.

부모에게 성소수자가 뭔지 강의하듯 설명했다. LGBT와 LGBTI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부모와 사이가 되게 좋은 편이다. 관계가 좋아서, 오히려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청소년기에 했던 것 같다.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계속 잘 지낼 거라는 생각은 있었다. 오히려 친구에게 얘기할 때 더 떨렸다. 주변을 봐도 당사자 가족의 경우 성별 정체성보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를 가장 염려한다.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걸 위해 준비했으니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가 아니라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라는 걸 강조하는데.

분명히 누군가 더 있을 텐데 그들을 지워버리는 건 아닌지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최초라는 말도 안 붙었으면 좋겠다. 말이 왜곡되어서 마치 그 사람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고 유일무이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마다 얘기했다.

성확정 수술(성전환수술) 여부가 트랜스젠더를 규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성확정 수술 여부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보는 시선이다. 수술 전부터 정체화하는 과정이 있고 수술은 따라오는 결과물이다. 출생할 때 부여받은 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정체화하는 사람이 트랜스젠더다. 다만 수술을 안 하면 성별 정정이 되지 않는 제도적 현실이 있다. 그래서 수술하지 않은 사람이 얘기할 여지가 좁은 것 같다.

성확정 수술 없이도 성별 정정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그중 ‘이들의 외관이 일반적 성별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일반인의 혼란감은 당사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감내되어야 한다’는 한 지방법원의 결정이 인상적이다.

트랜스젠더가 낯설 수 있다.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소수자 자체를 배척해버리면 그 사람은 갈 데가 없게 된다.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신분을 드러내고 활동하기도 쉽지 않다. 해당 판결문은 ‘과연 민주주의 사회가 무엇을 보장해줘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인권과 관련된 인상적인 판결이 있다면?

2022년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모)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도 허가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나왔다(이전까지는 자녀가 미성년인 경우 성별 정정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의 보충 의견 내용이 좋다. 법이 삶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야지, 장벽을 세우고 그 기준 안에 들어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법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0년대 부산에서도 성별 정정 판결이 있었다. 성별 정정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을 때인데 판결문에 따로 별지를 붙였다(2006년 대법원이 최초로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리고 예규를 만들어 성별 정정 기준을 만들었다). 법의 역할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고 누군가 고통을 호소할 때 법이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명문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오히려 사회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시선이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여성적’으로 꾸미는 것은 아니다. 숏커트에 바지를 입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여자라면서 왜 그러냐”는 말을 한다. 반대로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면 “너무 과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어떻게 해도 평가받고 의심받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사회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그렇게 엄격히 구분하고 다른 모습을 요구하는지 물어야 한다.

고 변희수 하사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

커밍아웃하기 몇 개월 전 전화 상담을 했고 복직을 위한 공대위 활동을 함께 했다.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든다. 되게 외로웠을 것이다. 얼굴이 알려지면 주목도가 확 올라간다. 전국적으로 알려진다는 건 길 가는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는 일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고 그게 좋은 쪽일 수도, 아닌 쪽일 수도 있다. 변 하사가 사는 곳이 청주였는데 (서울에 비해) 좁은 동네였다. 커밍아웃한 당사자로서 좀 더 알아보고 얘기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복직 사건 자체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개인 삶에 대한 부분을 놓친 것 같아 많이 후회됐다.

숙명여대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대대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의 흐름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까지 영향이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바꾸게 만들었고, 나 개인에게도 고민을 안겨주었다. 스스로 검열하게 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가 꾸밈에 집착한다는 말을 많이 들을 때였다. 인터뷰할 때 모습, 말투, 옷차림 하나하나 신경이 쓰였다. 입학 당사자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 내가 약간 대변하는 것처럼 되어서 그것에 또 상처받는 건 아닐지 고민이 많았다. 사건 이후에도 ‘내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에 영향을 미쳤다.

2020년 2월 서울 숙명여대 게시판의 ‘이 사회에서 내가 여성임을 체감할 때’라는 질문 위에 붙은 메모들. 당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김흥구

화장실 이용의 어려움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을 얘기할 때 여성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립의 문제로 가져가면 문제 해결에 실패하게 된다. 얼마 전 강남역 사건 10주기였다. 공용 화장실을 이용한 여성을 노려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범죄자가 문제이고 성폭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회·제도의 문제였다. 여성인권이 트랜스젠더 인권 때문에 위협받는다고 하며 배제의 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문제 해결을 가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소송에 소송대리인단으로 참여했다.

사실 대법원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 가서도 확률이 반반 정도라고 예상했다. 당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과연 될까’라는 정서가 있었다. 그런데 2심에서 이겼다. 떠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도 희망이 있구나’ 하는 반응들이 있었다. 문제 제기를 하고 싸우면 바뀔 수 있다는 걸 목격한 것이다. 승리의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좌절된 상황에서 희망을 주었다.

꼭 차별금지법이 아니더라도 현행법 안에서 ‘승리의 경험’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차별하지 말라는 게 법의 근본 정신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없더라도 판단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차별받은 피해자가 구제받을 길이 좀 더 열리겠지만 그게 핵심은 아닌 것 같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국가가 차별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몇몇 사람이 싸워서 소송을 통해 바꾸고 판사 몇 명이 좋은 판결을 내는 게 아니라, 국가가 차별을 내버려두지 않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표하는 것이다.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훨씬 크다.

누군가를 대표한다는 부담감이 클 텐데, 앞으로도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리수거도 잘 한다. 제대로 안 하면 트랜스젠더가 무단 투기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웃음). 일상에서 항상 약간의 긴장감이 있다. 2006년 대법원의 성별 정정 판결이 나왔지만 이후 제도적으로 바뀐 게 없다. 20년이 지나며 낡은 법이 되었다. 트랜스젠더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얘기하는 것도 필요한데, 잘 살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한편 오래오래 살고 싶다. 나도 사실 나이가 많은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감각이 없다.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30은 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또 다른 당사자들을 찾고 싶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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