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발급 ‘경력’ 무엇을 위해 누가 보관하나

장진희 2026. 6. 24. 06: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4일 대통령비서실 청년미래자문단은 6개의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일하고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 프리랜서의 현실을 이유로 프리랜서 경력증명 시스템 구축을 내세웠다. 보도자료에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설계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경력을 종합적으로 증명하는 시스템이라면 무에서 유를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의 방식을 확장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이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직무능력은행을 활용한 방식이 추진되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시스템의 윤곽은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이 빠져 있다. '누가 무엇을 보관하는가', 그리고 '그 증명을 어디에 쓰는가'다. 국가가 경력을 증명한다면 이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연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국세청이 보유한 프리랜서 소득자료, 교육 당국의 학력, 병무 기록, 공인 어학·자격 등이다. 아마도 이보다 많은 프리랜서 개인의 정보를 수집해 온라인으로 발급하며, 공공기관에서 시작해 민간 채용의 경력인정까지 대체하려는 지향으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소득과 학력, 자격과 이력이 한 사람의 키(key)로 묶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증명서가 아니라 한 개인을 한눈에 조망하는 신상기록이 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목적의 명확성, 목적, 구속성, 최소 수집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강력한 경력증명을 위해 더 많은 항목을 수집·발급할수록 제도는 증명을 위한 도구에서 프리랜서 개인의 프로파일링 인프라로 전환된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발성의 형해화다. 통합형 시스템은 데이터가 이미 축적돼 있음을 전제하며, 개인은 출력 여부만 선택할 뿐 통합 자체를 거부하기 어렵다. 이 증명이 채용에서 사실상 표준 서류로 요구되기 시작하면, 발급받지 않을 자유는 불이익을 감수할 자유로 축소된다. 형식은 임의가입이지만 실질은 강제가 된다.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형 노동자는 국가가 완전히 가독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되고, 한곳에 모인 프로파일은 그 자체로 유출의 표적이 된다. 증명의 편의와 감시 가능성의 확대는 같은 설계의 양면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정보통합으로 발급되는 증명서는 정작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증명서를 발급하는 것과 그것이 인정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가가 서류를 내준다고 은행이 대출심사에서, 기업이 채용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의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민간 채용의 경력인정을 대체하겠다는 지향도, 강제할 수단이 없는 한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공허한 우려가 아니다. 이미 2024년 프리랜서 대상 실태조사에서 프리랜서가 경력관리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인정받기 어려워서"(44.7%)였다. 증명 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효용이 없어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서류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청년 프리랜서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수준이지 해법은 아니다. 핵심은 공적 효력, 곧 그 증명이 임금노동자의 재직증명서, 원천징수영수증에 준해 취급되도록 만드는 제도적 연결이다. 발급에 무게를 두고 정작 중요한 활용처를 비워둔 구상은 해당 시스템을 설계하더라도 제대로 작동되지도 못할뿐더러 단순 개인 신상정보 수집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증명의 내용도 문제다. 소득신고 내역은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그 일을 잘 수행했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프리랜서 노동의 핵심 마찰은 발주자가 수행 품질을 사전에 검증하기 어렵다는 정보비대칭성에 있으며, 증명이 신호로 기능하려면 품질 정보를 담아야 한다. 존재 사실만 인증하는 증명서는 정보비대칭을 해소하지 못한 채 건수만 늘린다. 수단은 과도하고 목적은 모호하다.

경력증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쟁점은 누가 보관하고, 무엇을 위해, 어떤 순서로 설계하는가다. 먼저, 데이터를 국가 서버가 아니라 노동자 본인에게 둬야 한다. 행정정보를 위에서 끌어모으는 대신 노동자가 계약서, 정산 내역, 수행 확인 자료를 동의에 기반해 직접 축적·제출하는 방식이 침해를 최소화한다. 둘째, 발급보다 활용처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어느 제도에서 어떤 법적 효력으로 인정될지를 먼저 확정한 뒤, 그 목적에 필요한 최소 정보만 증명에 담아야 한다. 목적이 설계를 규율해야지, 발급 목적을 사후에 찾아 헤매서는 안 된다. 국가가 청년의 경력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구상이 선의에서 나왔더라도, 무엇을 위해 누가 보관하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것에 답하지 못한 증명서는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보호증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또 하나의 파일로 남을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Copyright © Copyright © 2026 매일노동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