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AI·보안… 로펌, 이젠 기업 복합리스크 관리하는 ‘전략기획실’

김은경 기자 2026. 6. 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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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별 대응’보다 ‘통합 관리’
경영권분쟁센터·글로벌리스크대응센터 등
여러 분야 전문가 모으는 ‘센터’ 체제 확산
사후 소송 대응에서 사전 리스크 관리로
기업들 질문 “이 사업해도 되나”로 바뀌어
로펌 경쟁력, 정교한 시나리오 제시에 달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상법·노동관계법 개정, 인공지능(AI) 기술 확산 등 경영 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변화하면서 기업들이 전례 없는 ‘복합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법무의 무게 중심이 사후 소송 대응에서 사전 리스크 관리로 옮겨가는 추세다. 로펌의 역할도 달라졌다. 법정에서 승패를 다투던 소송 대리인을 넘어, 기업 외부에서 사업 방향과 규제 대응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기획실’ 역할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관세부터 공급망까지…국경 넘는 자문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올 초 한국원산지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0~11월 미국 수출기업 33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59.5%가 대미 수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부 업종의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관세와 원산지 규정, 수출통제 등 복합적인 통상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사업 전반에 대한 자문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과 투자 과정에서 거래 구조 설계부터 실사, 인허가, 계약 체결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에 투자하는 이른바 ‘아웃바운드’ 거래에서 현지 로펌 선정과 업무 조율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율촌은 반도체·AI·이차전지 등 국가 핵심 기술을 둘러싼 수출 통제 규제가 강화되자 기술수출입통제대응센터를 운영하며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사건별 대응’에서 ‘통합 관리’로

지배구조를 둘러싼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작년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된 이후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 제안이 상정된 상장사는 56곳으로 전년(41곳)보다 늘었다. 가결률도 24.4%에서 26.8%로 올랐다. 행동주의 펀드와 기관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주주 대응과 경영권 방어 전략도 기업 리스크 관리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AI 도입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등 문제도 새로운 경영 과제로 떠올랐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조사 결과, 전 세계 기업 경영자 3235명 중 73%가 개인정보 보호·데이터 보안을 가장 큰 AI 리스크로 꼽았다.

이처럼 기업들이 여러 리스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환경이 되면서 로펌 조직도 바뀌고 있다. 과거 사건별로 운영되던 팀 체계를 넘어 여러 분야 전문가를 한 조직에 모아 기업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센터’ 체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광장은 최근 경영권분쟁센터와 중대재해대응센터, 디지털자산센터를 잇달아 출범시켰다. 개정 상법 시행과 행동주의 펀드 확산, 가상자산 제도화 등 새로운 규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평은 글로벌리스크대응센터와 AI바이오헬스케어센터, 기후에너지센터, 상장유지지원센터 등을 신설하며 팀 중심 조직을 센터 체제로 재편했다.

이런 통합 대응 수요에 맞춰 법무법인 간 합병도 이뤄지고 있다. 송무에 강점을 지닌 대륙아주와 기업 자문에 특화된 린은 최근 두 분야 전문성을 결합하기 위한 합병 절차에 착수했다.

◇전관 넘어 실무·학계 전문가 영입

영입 경쟁도 법원·검찰 전관에서 규제 당국과 학계 전문가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이 법률 분쟁만큼이나 규제 대응과 정책 변화 예측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태평양은 경쟁법 학자인 전성훈 고문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법무부(DOJ) 이코노미스트 출신 신동준 고문 등을 중심으로 법경제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세종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출신 조효제 고문,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정수 고문, 경제 분석 전문가인 이인호 서울대 교수 등을 영입해 금융 규제와 산업 정책, 경제 안보 분야 자문 역량을 강화했다.

화우는 금융 규제·법률 자문팀에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 출신 전문가를 더해 자금세탁방지(AML)·내부통제솔루션센터를 출범했다. 사전 진단부터 법률 해석, 금융당국 대응까지 한 조직에서 처리한다.

YK도 김화진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장상윤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 등을 영입해 기업 솔루션 그룹을 꾸렸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들이 묻는 질문이 과거에는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느냐’였다면 최근에는 ‘이 사업을 해도 되느냐’ ‘어떤 규제에 걸릴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며 “로펌 경쟁력은 기업이 직면한 정치·경제·사회적 변수를 법률과 결합해 얼마나 정교한 경영 시나리오를 제시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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