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노란봉투법의 아버지’, 이건 반칙 아닌가

김민철 기자 2026. 6. 2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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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박수근, 중노위원장 두 번 하며
노란봉투법 근거 사례 만든 뒤
입법 관여하고 지금은 전담 심판
혼자 입법·행정·사법 다하는 셈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이 20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2차 사후조정 3일차 회의를 마치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1년 중앙노동위(중노위)는 CJ 대한통운 사건 때 “직접 고용 관계가 없어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첫 사례였다. 산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중노위원장이 박수근 현 중노위원장이었고 박 위원장이 심판회의 위원으로 참여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 중노위 판정 이후 하청 근로자들의 원청에 대한 교섭 요구가 늘어났다. 중노위 판정 1년 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가 원청이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조선소 도크를 점거했다. 이 일은 노란봉투법을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처리할 때 박 위원장은 학계 대표로 당정협의 등에 참석해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를 ‘노란봉투법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다. 노란봉투법 입법 이후에는 노동부 자문위원 자격으로 시행지침을 만드는 데 좌장 역할을 했다.

이달 들어 나오기 시작한 중노위의 노란봉투법 관련 재심 사건은 23일 현재 20여 건이다. 이 사건들의 공익위원으로는 거의 모두 박 위원장과 김유진·김은철 상임위원이 들어갔다. 노동위 심판회의는 사용자 위원 1명, 근로자 위원 1명, 공익위원 3명 등 5명이 참여해 판정을 내린다. 두 상임위원은 고용노동부 출신이다. 현재 중노위에는 심판회의에 들어갈 수 있는 위원이 40여 명 있는데,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단위 분리 사건을 단 3명이 계속 결정하는 셈이다. 원래는 편향성 배제를 위해 위원을 무작위 배정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위원장이 직접 공익위원을 지정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근거로 위원장이 직접 들어가고 있다(이 예외 규정도 박 위원장이 1차 중노위원장을 할 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중노위 재심 결과는 지자체인 화성시 건을 제외하면 모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이 났다. 결국 박 위원장은 노란봉투법 첫 사례를 만들고, 입법과 지침 마련에 관여하고, 이제는 분쟁의 길목을 지키며 물꼬를 모두 한쪽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박 위원장은 한양대 교수 출신의 노동법학자로, 민변에서 활동했고 한국노동법학회장과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장 등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부터 3년간 중노위원장을 지냈고 이 정부 들어 다시 중노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이기도 하다.

노동 전문가들에게 몇 번 물어보아도, 노란봉투법처럼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노조와 교섭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법을 가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런 사안을 한 사람이 주도해 이끌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판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아니라 박수근 중노위원장의 의도와 설계에 따라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박 위원장이 노란봉투법 사건에 모두 공익위원으로 들어가 판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노위원장은 위원들이 공정하게 판정하는지 감독해야 할 자리인데 본인이 직접 심판을 보는 것은 과한 일 아닌가. 더구나 위원회는 다양한 위원의 의견을 고루 반영하라는 취지가 담겨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 노선이 분명한 위원장이 공무원 출신 2명과 함께 들어가 미리 답을 정해 놓은 듯한 자세로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칙에 가깝다.

근래 학자 출신이 자신의 ‘이상’을 이렇게 치밀하게 설계하고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는 사례가 있을까 싶다. 다만 그가 공직자로서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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