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마을 주민들이 돌봐요”…농촌형 돌봄공동체 ‘인생하숙집’
[KBS 창원]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정든 마을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남해 내동천마을 사람들은 특별한 집 한 채를 만들었습니다.
[김봄/바람개비학교 교장선생님 : "저희 마을 예쁘니까 많이 놀러 오세요."]
농촌형 돌봄공동체, 인생하숙집의 시작을 만나봅니다.
1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남해군 삼동면 내동천마을.
마을 회관 2층에는 바람개비 학교가 있습니다.
바람개비 체험 프로그램을 이끄는 김봄 어린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어엿한 교장 선생님입니다.
[김봄/바람개비학교 교장 : "저는 여기 마을을 아주 예쁘게 꾸미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버려진 페트병과 옷걸이는 아이들의 손을 거쳐 알록달록한 바람개비가 됩니다.
[김봄/바람개비학교 교장 : "저희 마을이 아무래도 인구소멸지역이다 보니까 마을을 좀 더 예쁘게 꾸미면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예쁜 바람개비들도 많이 만들고 꽃들도 많이 심게 되었어요. 좀 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 사람들이 많아져서 북적북적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2024년 찾아가는 마을학교 공모를 시작으로 바람개비 마을이 된 내동천마을.
버려진 페트병으로 바람개비를 만들고, 전국에서 모인 꽃씨로 꽃밭을 가꾸며 마을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날 마을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잔치가 열렸는데요.
결혼 60주년을 맞은 장기선, 임춘재 어르신 부부의 회혼례.
가마를 타고 시집왔던 할머니는 생애 처음 웨딩드레스를 입고 할아버지는 턱시도를 입었습니다.
평소 농사일에 쓰이던 경운기가 이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웨딩카로 변신했습니다.
[장기선·임춘재/내동천마을 :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참 고생도 많았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원하고 있어요. (동민들하고 바람개비 학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회혼례가 평생 농촌을 지켜온 세대에게 보내는 마을의 감사 인사였다면, 인생하숙집은 그 세대가 정든 마을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입니다.
[전경선/내동천마을 청년회장 : "남해가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이고 1년에 한 번씩 마을 분들이 다른 지역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시거든요. 이분들은 평생 농촌을 지키면서 사셨던 분들인데 이분들이 요양원에 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이제 인생하숙집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돌봄이 필요한 분이 입소를 하시면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식사, 청소 이런 것들을 담당을 해 주실 거예요."]
마을 회관으로 사용되다 방치돼 온 건물을 고치기 위해 주민참여예산 5천만 원이 투입됐지만, 공간을 완성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살림장만 챌린지’를 시작했고, 남해군청 공무원 50여 명과 남해군민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이 모여 20평 규모의 공간에 냉장고와 세탁기, 생활용품이 채워졌습니다.
[안성필/챌린지 참가자 : "인생 하숙집 사업이 취지가 어르신들의 존엄한 노후를 마을에서 보낼 수 있게 한다는 그런 취지를 알게 됐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제가 작은 마음을 모아서 이 인생하숙집 사업이 원활하게 잘 추진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하숙집은 별도의 입소비 없이 전기요금 등 최소한의 생활비만 부담하면 입소가 가능한데요.
식재료와 생필품은 마을 안에 조성 중인 '내동천상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생하숙집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만으로 운영되기에는 살펴야 할 부분도 많은데요.
마을 밖에서 힘을 보태온 이들을 명예 주민으로 임명해 마을의 돌봄을 함께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최미라/마을변호사 : "의료법이라든지 다른 법과의 충돌이라든지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법률적인 자문을 제가 해드리고 최선을 다해서 도울 생각입니다."]
[유수상/내동천마을 명예주민 : "남해군의 마을 남해군 공동체 지원센터에 강의하러 왔다가 이 마을과 어떤 사업을 하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드렸고 오늘 명예 주민으로 임명을 받게 됐습니다."]
남해 내동천마을은 돌봄을 서비스의 이름으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플 때 곁을 내어주는 관계.
그 평범한 일상이 이 마을에서는 돌봄이 됩니다.
[최갑환/내동천마을 마을이장 : "인생하숙집은 우리 마을 어르신이 늙어서 다른 데 가지 않고 우리 마을에 머물면서 우리 마을 주민과 항상 같이 지내고 정이 넘치고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챙기고 우리 마을 주민 전체가 보호자가 돼서 하는 사업입니다."]
돌봄은 거창한 제도보다 작은 부탁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관계에서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박연/내동천마을 사회복지사 : "아파도 참고 폐 끼치는 게 싫어서 집에서 혼자 끙끙 앓으시는 분들이 있으실 텐데 내 이웃만큼은 내 가족처럼 내 몸 하나 맡기는 거에 대해서 서슴지 않게 부탁할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좀 됐으면 좋겠어요."]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제도가 아닌 이웃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노후를 함께 지켜보자는 약속.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이 마을에서 그 실험은 오늘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성:정현정/촬영·편집:한동민/내레이션:신유진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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