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원전 유치, 영덕에 다시 희망이 움튼다
“죽기 전에 북적이는 동네 한번 보고 싶어”…신규원전에 다시 희망 거는 영덕

“발전소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이 와야지. 사람이 있어야 학교도 있고 시장도 있고 마을도 있는 거 아니겠어.”
경북 영덕읍 노물리 임시주택 단지에서 만난 송팔선(93) 할머니는 신규 원전 유치 확정 소식에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초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원전은 단순한 발전소 건설 사업이 아니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활력을 잃어가던 지역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고 마을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확 달라진 전통시장 분위기
한여름 무더위가 골목을 덮었지만, 상인들의 대화 주제는 온통 ‘원전’이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대형원전 2기 건설 후보지로 영덕군을 최종 선정하면서 지역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8) 씨는 “천지원전이 취소되고 나서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며 “가게 문 닫은 곳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진짜 지역이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장 안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61) 씨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건설 인력이 들어오면 식당도 살고 숙박업도 살아날 것”이라며 “지금은 주말이 아니면 손님 보기가 쉽지 않은데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부분은 인구 증가다. 영덕군은 오랜 기간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영덕군 인구는 2026년 5월말 현재 3만2500명, 10년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7500명 정도 줄었다. 감소율이 거의 20%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청년층 유출은 지역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19~39세의 청년 인구 유출은 전체 인구 축소 비중보다 더 크다.
한 상인은 “학교를 졸업하면 포항이나 대구, 수도권으로 떠난다”며 “지역에서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이 부족했는데 원전이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덕읍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상가 거리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토지와 상가에 대한 투자 문의가 늘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아직 거래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단계는 아니지만 문의는 확실히 증가했다”며 “사업이 본격화되면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대가 큰 지역 건설업계
영덕지역 한 건설업체 대표는 “원전 건설은 수십조 원 규모의 국가사업”이라며 “토목과 건축, 장비, 자재, 운송 등 지역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업체 참여 비율”이라며 “외부 대형업체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전 건설이 시작되면 숙박업과 식당, 장비 임대업, 자재 공급업체까지 연쇄적인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릴 드문 기회”라고 평가했다.
실제 원전 건설이 본격화되면 수천 명 규모의 건설 인력이 장기간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의 기대는 단순한 발전소 건설에 머물지 않는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는 지역 재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 주민은 “지금 영덕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며 “원전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송 할머니는 지난해 3월 산불로 평생 살아온 집을 잃었다. 불길이 휩쓸고 간 뒤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집터뿐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옛집이 있던 자리를 찾는다고 했다.
“빈터인데도 자꾸 가보게 돼. 평생 살던 집인데 어떻게 잊겠어.”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산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나기 전에는 동네에 불빛도 많고 사람도 많았어. 지금은 밤이 되면 너무 조용해. 사람 사는 소리가 없어.”
그러면서 원전 사업이 지역 재건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죽기 전에 우리 동네가 다시 북적거리는 모습 한번 보고 싶어. 그게 내 소원이야.”
하지만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 문제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주민들은 향후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신규 원전 건설까지는 정부 계획 반영과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 공청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허가 등 적지 않은 절차가 남아 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제적 효과와 별개로 안전성과 환경 문제는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며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참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 부지 확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원전 건설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질 일자리와 인구 유입, 지역경제 회복이다. 산불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영덕이 원전을 계기로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주민들이 바라는 미래는 결국 하나다. 사람이 돌아오는 마을, 다시 살아나는 영덕이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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