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보고서 판단한 위원 공개될까… 법정서 맞붙은 '알권리' vs '보안'
삼성 반도체 작업환경보고서 관련
국가핵심기술 판단한 위원 명단 공개 쟁점
"심의 주체 밝혀야" vs "로비 우려"

"일부에게만 알려지는 것과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 중 어느 쪽이 위원회를 로비 창구로 만들지 따져봐야 합니다."
"위원 명단은 단순한 인적 정보가 아니라 국가핵심기술 보호와 직결된 정보입니다."
23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대법정 방청석은 운동화를 신은 학생들과 시민들로 가득 찼다.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로 판단한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위원 명단을 공개할지를 두고, 법정에서는 투명성과 보안 논리가 충돌했다. 양측 대리인이 차례로 화면에 자료를 띄우자 방청객들은 스크린과 재판부를 번갈아 바라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덕)는 이날 제10회 열린법정(open court) 프로그램으로 시민단체 반올림이 산업통상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변론을 열었다. 반올림은 2018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 정보가 포함됐다고 판단한 반도체 분야 전문위원회 위원과 당시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위원, 2015년 이후 위촉된 민간위원의 이름·소속·임기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국가핵심기술의 지정·해제, 수출, 해외 인수합병 등을 심의하는 산업부 소속 기구다. 반올림은 당시 위원회 판단 이후 작업환경 자료 공개 범위가 제한됐고, 이 결정이 지금도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이나 소송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원고 대리인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는 "국가핵심기술 정보나 심의 과정이 아니라, 그 판단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라는 것"이라며 "그렇게 중요한 업무를 대체 누가 하고 있는지 국민이 모르는 게 합당한가"라고 물었다.
반올림은 위원 명단이 공공기관의 인적 구성에 관한 기본 정보라고 본다. 공개할 경우 업무 공정성에 현저한 지장이 생긴다는 산업부 주장은 막연하다고 반박했다. 위원회 회의 장면이 방송에 공개돼 일부 위원의 명패와 소속이 노출됐고, 몇몇 위원은 활동 이력을 홍보 자료에 사용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산업부는 위원 명단 공개 자체가 국가핵심기술 보호 업무를 흔들 수 있다고 맞섰다.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와 수출 승인 등은 전문가 판단에 크게 좌우되므로, 신원이 공개되면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이 위원에게 접근해 로비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 대리인 이근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위원 명단은 단순한 인적 정보가 아니라 국가핵심기술 보호와 직결된 정보"라며 "과거 명단까지 공개되면 현재와 향후 전문위원 후보군까지 추정돼 사전 접촉이나 포섭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변론 뒤에는 방청객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방청객들은 "변호사들이 제시하는 하급심 판례도 판단에 고려하느냐", "행정소송은 구두변론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냐, 서면 심리와는 차이가 있느냐" 등을 물었다. 싱긋 웃으며 질문을 경청한 이상덕 부장판사는 "행정사건은 사실관계 자체보다 법령을 어떻게 해석해 사안에 포섭할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할지를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무 골무를 낀 손으로 사건 설명자료를 한 장씩 넘기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 조준한씨는 "교과서에서 배운 법과 판례는 딱딱하게 느껴졌는데, 법정에 와 보니 법이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다음 달 9일 오전 10시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다. 법정을 마지막으로 나서던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김근형씨는 "판결 결과가 너무 궁금한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마친 그의 뺨에는 붉은빛이 돌았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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