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0% 급락, 서킷브레이커 발동···결산·리밸런싱 압박에 변동성 폭발
증권가 낙관론 이어졌지만 8200선까지 밀렸다
기관 상반기 결산 매도·국민연금 리밸런싱 악재

미·이란 갈등과 레버리지 상품 과열에 더해 반도체 고점 우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및 국민연금 리밸런싱발 수급 악재가 겹치며 코스피가 하루 만에 10% 가깝게 급락했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고 공포지수(VKOSPI)가 치솟은 가운데 이번 폭락이 최근까지 반도체 펀더멘탈을 근거로 코스피 1만선 진입 등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증권가 예측대로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 시선이 쏠린다.
23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910.71포인트(9.99%) 급락한 8203.84로 마감했다. 전장보다 0.34% 내린 9083.54로 출발한 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분출되며 낙폭을 키웠다. 장중 한때 9175.45까지 반등하기도 했으나 오후 들어 매물이 쏟아지며 8200선까지 주저앉았다.
장중 급격한 하락으로 오전에는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으며 오후 2시 33분에는 코스피지수가 8% 이상 밀리며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이는 2026년 들어 4번째, 역대 10번째 기록이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조1017억원 4조512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반면 개인은 8조5223억원을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냈다.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 대형주인 SK하이닉스(-12.47%)와 삼성전자(-12.31%)를 비롯해 현대차(-12.05%) 삼성물산(-12.50%) 등이 일제히 폭락했다.
같은 날 코스닥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76.88포인트(7.94%) 내린 891.52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588억원 1324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개인이 3983억원을 순매도했다. 에코프로(-10.04%) 에코프로비엠(-9.48%) 레인보우로보틱스(-12.22%) 원익IPS(-12.99%) 등 시총 상위 종목 대부분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반도체 고점론과 금투세 정책 불안이 심리 위축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급락의 일차적인 배경으로 반도체 업종의 단기 과열 부담을 꼽는다. 인공지능(AI)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 기대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자 차익실현 욕구가 극대화된 상태에서 간밤 뉴욕 증시 AI 기술주들의 약세가 국내 시장으로 전이됐다는 분석이다. 25일로 예정된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메모리 업황이 고점에 도달했다는 '피크아웃(Peak-out)' 우려가 번진 점도 자금 이탈을 부추겼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점화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논의 역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고액 자산가와 대형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국내 증시 탈출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순방 결과 브리핑을 통해 "주식시장의 양극화가 심각한 자산 양극화를 부른다"며 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당부했으나 시장에서는 이를 금융소득 과세 강화 움직임과 연결 지어 해석하는 기류가 강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 또한 최근 인터뷰에서 금투세를 "부의 재분배와 금융세제 선진화를 위한 제도"라며 도입 당위성을 주장해 시장의 정책 불안전성을 높였다.
연기금 '55조원 리밸런싱설'과 포트폴리오 조정 압박
수급 측면에서는 상반기 결산을 앞둔 기관투자자들의 기계적인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종목 재조정)이 주가 하락 폭을 키웠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연기금 등이 상반기 수익률을 확정 짓기 위해 기존 주도주였던 반도체 비중을 줄이는 과정에서 시장에 매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하반기 자산배분 기준 충족을 위해 국내 주식 비중을 대대적으로 낮출 것이라는 '55조원 리밸런싱설' 루머까지 시장에 확산되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 이처럼 반도체 차익실현 매물과 세제 불안, 기관·연기금 수급 리스크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악순환이 유발됐다.
이에 따라 시장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다시 90선 턱밑까지 치솟았다. 이날 VKOSPI는 장중 한때 89.69까지 올랐다. 이 지수가 90포인트에 육박한다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향후 30일간 하루 평균 약 플러스마이너스 5.7% 수준의 극심한 주가 변동 위험을 예상하고 있음을 뜻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 협상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회전율이 최고 200%에 육박하는 등 과열 양상이 심각해 변동성이 확대되었다고 덧붙였다.
증권가에선 연일 낙관론···마이크론 발표 주시
이번 폭락은 최근까지 국내 증권가가 코스피의 강한 우상향 기조를 예측하며 긍정적인 전망을 쏟아낸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충격이 크다. 폭락 전날인 22일 IBK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등락범위 전망치를 기존 6500~9000에서 8000~11000으로 대폭 상향 조정한 바 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일 보고서를 통해 "이번 써머 랠리를 통해 코스피 10000선 혹은 이를 상회하는 수준이 기대된다"며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6%까지 상승하며 전례 없는 고마진을 기록 중이고, 주가수익비율(P/E) 관점에서도 현저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증권가가 상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마자 지수가 8200선까지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이번 하락이 펀더멘탈 훼손 없는 '일시적 수급 조정'에 그칠지 아니면 하락 전환의 신호탄일지를 두고 혼란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최근까지 이어진 증권가의 긍정적 업황 전망이 복귀할지, 아니면 시장의 공포가 장기화될지는 오는 25일(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실적 발표가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해외 IB들이 메모리 병목 현상에 따른 가격 상승세를 반영해 반도체 기업들의 2분기 전망치를 상향해 왔다"며 "마이크론 실적이 실제 업황 호조를 증명해 줄 경우 반도체 대형주의 실적 가시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증시가 진정세를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급격하게 폭락할 때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주식매매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제도다. 코스피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어 모든 주식거래가 20분간 중단된다.
☞ 사이드카(Sidecar): 선물시장의 급등락이 현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 현물 프로그램 매매호력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다. 코스피 선물가격이 기준가격 대비 5% 이상 변동해 1분간 지속될 때 발동되며 주식시장 매매가 완전히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보다 한 단계 낮은 시장 안정화 조치다.
☞ VKOSPI(코스피200 변동성지수):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토대로 향후 30일간 코스피200 지수가 얼마나 변동할지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지표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거나 불안할 때 급등하는 특성이 있어 흔히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린다.
☞ 피크아웃(Peak-out): 경기나 기업의 실적, 주가 등이 정점에 도달한 뒤 하락세로 돌아서는 전환 국면을 의미한다. 반도체 시장에서 피크아웃 우려가 나온다는 것은 제품 수요나 가격 상승세가 최고조에 달해 앞으로는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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