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정치 붕괴된 영국, 10년간 총리 6명…경제 충격 쌓였다
“새로운 이탈리아” 조롱 받아

노동당·보수당이 교대로 집권하며 안정적인 양당 정치의 상징이었던 영국 정치가 표류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각) 취임 2년 만에 사임을 발표하면서 영국은 지난 10년 동안 6명의 총리가 중도 하차하게 됐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묻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로 물러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이후 총리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4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영국 역사상 약 200년 만에 가장 빠른 총리 교체 주기다. 특히 스타머 총리는 영국 현대 정치사에서 손꼽히는 압도적 총선 승리로 집권했음에도 2년도 되지 않아 물러나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2016년까지 70년 동안 영국은 총리가 13명에 불과했다. 노동당과 보수당이 교대로 정권을 주고받는 안정적인 양당제 국가였다. 특히 1979∼1990년의 마거릿 대처 보수당 내각과 1997∼2007년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내각은 합산 21년의 장기 집권으로 현대 영국을 재설계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제 “유럽의 새로운 이탈리아”라는 조롱을 받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한때 잦은 총리 교체로 정치 불안의 대명사였던 이탈리아와 비슷한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집권 4년 차에 접어들며 이탈리아 공화국 역사상 최장수 정부 수반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영국 정치의 표류는 보수-진보 양당 정치의 붕괴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극우 영국개혁당은 28.9% 득표율로, 136개 지방의회 5066석 중 1453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개혁당은 기존에 2석에 불과했다. 집권 노동당은 21.2% 득표율에 1068석으로 2위, 중도 자유민주당이 16.7%에 877석으로 3위, 보수당은 15.9%에 801석으로 4위, 녹색당이 11.6%에 587석으로 5위였다. 이 선거 결과만 보면 영국은 이미 4~5개 정당이 경쟁하는 다당제 국가가 됐다.
이런 현상을 이변으로만 치부하긴 어려워 보인다. 개혁당은 지난 1년간 지지율 30% 안팎을 유지하며,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보수당 이외의 정당으로 최장기간 여론조사 1위를 지키고 있다. 개혁당의 지도자 나이절 패라지는 지방선거 개표가 진행되던 날 밤 측근에게 “스타머가 물러나면, 내가 총리 세 명을 쫓아낸 게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10년 전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패라지는 이제 100년 넘게 이어진 영국 양당 체제의 붕괴를 가속하는 핵심 동력이 됐다. 하지만 개혁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도자 패라지에 대한 비호감도가 65%에 달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 불안의 배경에는 불안한 현실이 있다. 대처와 블레어의 집권을 거치면서, 영국은 산업 기반이 허물어지고 금융 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국가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뒤이어 이뤄진 공공 부문 긴축은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켰다. 2016년 이뤄진 브렉시트는 수년간의 불확실성과 투자 위축을 초래했고, 코로나19 대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란 전쟁은 인플레이션을 폭발시켰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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