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학력 철폐…SK하이닉스, 채용 화제 속 ‘희망고문’ 우려
반도체학과 졸업생도 적응 어려운데…“홍보 성급했다”
![SK하이닉스 채용 지원서의 학력 입력 화면. 학력 제한은 폐지됐지만 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 학력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항목은 선택 사항으로 남아 있다. [사진=SK하이닉스 화면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3/552795-r1dG8V7/20260623163506589ukjm.png)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SK하이닉스가 인재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 3월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한 데 이어 6월에도 추가 채용 절차를 밟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업황 회복과 수요 확대가 전망되면서 선제적으로 인력 보강에 나선 모습이다. 이와 함께 일반인공지능(AGI) 시대 대비를 위한 발빠른 행보로 읽히면서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학력 제한 전면 폐지'를 선언한 이번 추가 채용은 변화의 새바람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채용 절차가 종료된 이후 논란도 예상된다. 실제 지원서에는 학력 기재란이 여전히 남아 있어 '보여주기식 혁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서류 마감을 앞둔 이번 채용 제도의 핵심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3대 근육(생각·적응·공감)'을 갖춘 인재를 찾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학력 장벽을 허물고 실제 직무 수행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인재를 발굴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실제로 이번 채용에서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등 학력을 제한하는 자격 요건을 공고에서 삭제했다. 학력 대신 지원자의 보유 경험, 직무 역량, 기업문화 적합성 일치를 우선했다. 여기에 주요 기술 직무를 대상으로 '세 자릿수' 규모의 대규모 선발을 예고하며 청년 고용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업계에서 불거진 성과급 논란의 시발점이면서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꿈의 직장'으로 부상했다. 국내 여론은 학력 제한 폐지로 보여준 최 회장의 혁신경영에 박수를 보냈다. 문제는 청년 구직자들의 체감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서류 절차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학력 제한을 없애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지만, 정작 지원서에는 학력 기재란을 선택 항목으로 남겨두면서 기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고학력의 지원자는 학력 기재란을 공란으로 남겨두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학력 제한 폐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채용 지원서의 경험기술서 입력 항목. [사진=SK하이닉스 화면 캡처]](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3/552795-r1dG8V7/20260623163507859atbb.png)
학력 기재란이 남아 있는 한 평가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 배경이 암묵적으로 작용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순 없다.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황용식 교수는 "학력을 선택사항으로 남겨두더라도 자기소개서나 활동 경험 등을 통해 지원자의 학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어 완전한 학력 배제로 보기는 어렵다"며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했다가 중도에 폐지될 경우 기업뿐 아니라 제도를 기대했던 고졸 인재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업 경쟁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충분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도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스펙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력 대신 직무 경험과 기업문화 적합성을 평가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고교 졸업자나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어떤 경험을 얼마나 쌓아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지원 자격은 넓어졌지만 준비해야 할 요소가 불명확해지면서 오히려 또 다른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숙명여자대학교 서용구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중심 문화를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완벽하진 않더라도 학력 제한의 문턱을 낮춘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처럼 학력보다 실무 역량을 중시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SK하이닉스의 시도가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반도체와 같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고졸 인재가 얼마나 실질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황용식 교수는 "대학 반도체학과 졸업생조차 현장에서 실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데, 체계적인 분석 없이 도입된 제도가 자칫 조직 내 갈등이나 비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SK하이닉스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제도 도입 취지로 갈음했다. 실제 평가는 학력 기재 여부가 아닌 직무 역량과 경험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관계자는 "급변하는 AI 환경 속에서 미래 인재들의 경쟁력은 특정 학위나 정형화된 스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채용 기준을 혁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