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패배·학살·망각의 언어[박은하의 베이징 리포트]

박은하 기자 2026. 6. 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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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유명 카페가 최근 6월 25일 한국전쟁 76주기를 맞아 ‘멸공라떼’라고 이름 붙인 음료 수익금을 참전용사와 보훈단체에 기부하는 캠페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홍보물에 사용된 태극기 사괘 문양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엉터리 애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난은 대체로 ‘태극기 오류’ 지적에 그쳤다.

멸공은 공산주의자를 멸한다는 뜻이다.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후 신문 기사에서 ‘멸공전선’ ‘멸공통일’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유명한 군가 ‘멸공의 횃불’은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한 1975년 만들어졌다. 멸공은 ‘반공’으로는 모자라고 ‘승공’은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말하는 ‘패배의 언어’다.

멸공은 또한 ‘학살의 언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1950년 11월~1951년 5월 전북 고창 지역에서는 333명의 주민들이 ‘좌익’, ‘빨치산’, ‘부역자’ 등으로 몰려 국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부상, 행방불명됐다. 한 마을에서만 피난민 포함 127명이 즉결처형됐다. 1950년 7월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민간인 학살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발생했으며 멸공이란 말이 울려 퍼지자 중국군이 닿지 않은 지역, 인민군이 물러간 지역 곳곳이 피로 물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지난 9일 조·중우의탑을 찾아 참배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중국군을 기리는 탑으로 북·중 우호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중국은 미·중 간 첫 교전이 벌어진 1950년 10월 25일을 기점으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한 이후 한국전쟁을 미국에 맞서 승리한 전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이 실제 인식하는 한국전쟁은 ‘휘말린 전쟁’, ‘악몽 같은 전쟁’에 가깝다. 중국과 소련은 처음에는 북한의 남침을 반대했지만, 김일성의 지속적 설득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찬성으로 돌아서자 마오쩌둥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이 압록강 근처까지 밀고 오기 직전까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는 참전 여부를 두고 격론이 일었다.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 김동길 베이징대 교수 등 중국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소련과 중국 사료를 통해 밝혀낸 내용이다.

미 정부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1971~1972년 미·중 비밀회담 기록에 따르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는 “북이든 남이든 코리안들은 감정적으로 충동적인 사람들”이라며 중국과 미국이 영향력을 발휘해 한반도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53년 미국이 휴전에 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 시도를 막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과 달리 영웅적 서사가 없으며 베트남 전쟁과 달리 충격과 반성을 불러오지도 못했다. 중국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지만 1950년대 미국 국력의 최전성기에 묻혀 지나갔다. 미국은 한국전쟁 언급을 자제하면서 동맹을 강조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달 한국을 중국을 겨냥한 단검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가 파장을 일으켰고, 미국은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멸공이란 말이 아무렇게나, 심지어 애국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진짜 한국전쟁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중이 한·미동맹과 한국전쟁을 입맛대로 활용하는 데 무력하며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지운다. 올림픽공원 시위대 일부가 주니어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이 ‘잠재적 부정선거 세력’일지 모른다며 “양말을 벗겨야 한다”고 겁박한 행동이 역사상의 멸공 정신에 가깝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전쟁을 지정학의 논리로만 보지 않고 폭력을 응시하며 진실을 파헤쳐 가능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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