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 판옵티콘의 공포…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990년, 어느 소도시의 가구 전시장 지하.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은 우연히 문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문 너머에는 끝이 없었다. 노란 형광등 아래, 똑같이 생긴 방들이 방을 낳고, 그 방이 또 다른 방을 낳았다. 가구들은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각도로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공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뒤에서 무언가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케인 파슨스 감독의 영화 〈백룸〉이 건드리는 공포는 단순한 괴물의 공포가 아니다. 이 영화는 더 오래되고 더 깊은 곳을 건드린다. 탈출할 수 없다는 공포, 반복된다는 공포,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 공간이 나를 알고 있다는 공포. 백룸은 클락의 내면을 먹고 자란다. 건축가를 꿈꿨으나 가구점 주인으로 늙어가는 남자, 광고를 위해 해적 선장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던 굴욕을 술로 삼켜온 남자. 백룸은 그것을 알았다. 그의 가장 부끄러운 기억을 꺼내 괴물로 빚었다.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건축적 공간'은 왜곡되고 뒤틀린 무한 루프가 되어 그를 가두었다. 도망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갔다. 백룸은 기억으로 만든 감옥이었다.

심리치료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의해 집 안에 갇혀 살았던 아이. 어머니가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지켜봐야 했던 아이. 그 숨 막히는 기억이 백룸 안에서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냉랭한 형광등, 차갑고 메마른 복도, 시체 안치실 같은 정적. 그것은 그녀가 평생 닫아두려 했던 방의 확장판이었다. 백룸은 무너진 과거를 건물 크기로 키워놓고, 그 안에 사람을 던져 넣는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공포는 후반부에 찾아온다. 백룸을 운영하는 연구소 직원 필(마크 듀플라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는 원래 MRI 기계를 만들던 곳이었다고. 강력한 자기장으로 신체를 단면으로 잘라 스캔하듯, 이 공간은 인간의 무의식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본다. 공포와 수치와 트라우마, 그 모든 내밀한 것들이 데이터가 된다. 감시는 몸을 넘어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백룸은 결국 판옵티콘의 디지털 버전이다. 제레미 벤담이 설계하고 미셸 푸코가 해부한 그 건축물.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자신이 지금 감시받는지 알 수 없는 구조. 비대칭의 시선. 끝없이 복제된 사무실,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노란 벽지, 무색무취의 공간은 그 건축의 극단이다(클락이 실패한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개성은 지워지고, 주체성은 소멸하고, 인간은 관찰 가능한 데이터로 환원된다.
영화 속 거칠게 흔들리는 저화질 캠코더 화면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지금 감시 카메라의 시점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손에 든 카메라가 동시에 자신이 완벽한 피감시자임을 증명하는 역설. 물리적 감시탑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알고리즘이, 플랫폼이, 데이터가 우리의 내면을 샅샅이 훑는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부끄러워하는지, 무엇을 가장 숨기고 싶은지.
백룸은 1990년 어느 소도시의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오늘 열었던 앱 속에, 당신이 무심코 클릭했던 광고 뒤에, 당신이 어젯밤 검색창에 혼자 털어놓은 그 단어 안에 이미 '백룸'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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