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띄운 ‘반도체 머니’…“자산 불평등 확대의 원년 될 것”
③부동산에 흘러드는 자금

신혼부부인 직장인 김아무개(33)씨는 얼마 전 전셋집을 알아보다가 결국 4억원의 대출을 끼고 경기 수원 팔달구에 아파트를 매수했다. 전세 물건 자체가 씨가 말랐고 그나마 나온 물건도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김씨는 “원리금 상환에 다달이 300만원 이상 나갈 처지가 부담스럽지만, 집값이 무섭게 오르는 걸 보면서 이러다 영영 집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앞섰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에 소외되지 않으려 무리해서 집을 산 것이다.

반도체발 실적 랠리로 주식 시장에서 불어난 금융소득과 대기업의 억대 성과급이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자산가와 고소득층이 주식으로 번 돈과 성과급 등을 발판 삼아 고가 주택을 사들이면서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한국 사회 부의 최종 집결지가 부동산이라는 인식이 재확인되면서, 서울·수도권 주요 입지에 주택을 소유한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사이 자산 격차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식해서 번 돈 1조3천억으로 서울 집 샀다
주식 시장이 상승해도 부동산을 사들일 정도의 자본이득을 얻는 투자자는 극소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주식투자자(1446만5천명) 가운데 60.4%(874만4천명)는 상장주식 1천만원 미만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주식을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주식 부자’는 0.5%인 7만9천명에 불과했는데, 이들이 점유하는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불장’을 보이더라도, 그로 인한 금융소득은 최상위 극소수 부자들에게 극단적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의 억대 성과급도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노동자들의 선호 지역에선 벌써부터 집값 급등세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을 보면, 반도체 기업 셔틀버스가 다녀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으로 불리는 화성 동탄(9.6%), 용인 수지(9.0%), 성남 분당(7.4%)이 서울(4.5%)을 크게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에스케이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성과급이 지급되는 내년 1분기에 잔금을 치르는 거래가 올해 하반기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 쏠림을 넘어 계급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핵심 통로다. 자산가와 고소득층의 금융소득과 성과급 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실물자산 격차가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자산가치가 근로소득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상승해 다시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구조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는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자산가치 급등기에는 자산 격차가 구조적으로 커지게 된다. 일부의 성공 사례로 자산 불평등의 심각성이 가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비(KB)부동산 데이터허브를 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7120만원에 달해 2년 전보다 32.7%나 올랐다. 부동산 시장 상승 사이클에 올라탄 유주택자들이 자산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고 이를 다시 투자에 활용하는 동안, ‘내 집 마련’에 실패한 이들은 월세 등 주거 비용으로 소득의 상당 부분을 소진하면서 자산 형성의 첫발조차 떼지 못하는 우려가 커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자산을 통한 부의 증식이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보다 격차를 심화시키는 다중격차의 분기점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이미 자산 보유 여부는 단순히 현재의 불평등 문제가 아니라 주거, 교육, 결혼, 출산, 노후 등 생애 전반의 기회를 좌우하고 있다”며 “반도체발로 증식된 부가 재분배로 흘러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지 않으면, 2026년은 자산 불평등 확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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