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대선, 트럼프가 민 우파가 웃었다

박강현 기자 2026. 6. 2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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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代 정치 신인, 25만표 차 승리
치안 회복·경제 살리기 공약 주효
美 루비오 “좋은 날들 오고 있다”
現 대통령 등 좌파는 불복 움직임

21일 치른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범우파 진영의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쟈(48) 후보가 집권 좌파 진영의 이반 세페다(64) 상원 의원에 승리했다. 에스프리에쟈는 개표가 99.9% 진행된 상황에서 49.7%(약 1295만표)를 득표해 48.7%(약 1270만표)를 얻은 세페다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정권이 4년만에 물러나면서 블루타이드(중남미 우파 연쇄 집권) 흐름이 더욱 짙어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콜롬비아 항구 도시 바랑키야에서 이날 대선에서 승리한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쟈(오른쪽)와 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호세 마누엘 레스트레포 아본다노가 축하 집회 참석을 위해 방탄 차량을 탄 채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다만 콜롬비아 역사상 가장 박빙의 선거로 진행된데다 패배한 집권 좌파 진영이 선거 불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후폭풍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에스프리에쟈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반색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그가 대승을 거뒀다”고 썼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에스프리에쟈와 통화했다며 X에 “콜롬비아의 가장 좋은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쓰고 새 정부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좌파 정권 퇴진시킨 ‘엘 티그레(호랑이)’

오는 8월 취임하는 에스프리에쟈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아웃사이더’다. 형사 전문 변호사와 사업가 등으로 활동해온 그는 지난해 7월 “우리 나라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있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그는 좌파 게릴라 조직원 출신인 구스타보 페트로 현 대통령의 반미(反美) 일변도 정책과 마약 범죄 조직에 대한 유화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생활고와 치안 악화로 민심이 악화하면서 에스프리에쟈에 대한 강력한 지지세가 형성됐다. 콜롬비아에서는 최근 마약 카르텔과 좌파 무장조직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해 살인 사건은 10년 만에 최고치인 1만4780건을 기록했다.

21일 실시된 콜롬비아 대선 결선 투표 결과 발표 직후 수도 보고타에서 우파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쟈 후보 지지자들이 호랑이 인형을 든 채 환호하고 있다. 에스프리에쟈는 유세 과정에서 자신을 '호랑이'로 자칭하고 다녔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스스로를 “엘 티그레(호랑이)”라고 부르며 좌파 정부가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며 추진해오던 범죄 조직 및 반군 단체와의 평화 협상을 파기하고, 이들을 군사 작전으로 제압해 ‘힘을 통한 평화’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아마존 밀림에 초대형 교도소 10곳을 추가 건설하고, 필요할 경우 계엄령 선포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대해진 국가 조직을 40% 축소하고, 석유 탐사 재개 등 해외 투자를 유치해 경제를 되살리겠다고도 선언했다. 이 같은 공약으로 전통적 보수층뿐 아니라 치안·경제 문제 해결을 바라는 민심까지 빠르게 흡수하며 난립 양상을 보이던 우파 후보들을 압도했다.

에스프리에쟈는 선거 운동 기간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주로 현장을 누비며 선거를 ‘부패한 귀족 정치인과 패기 있는 정치 신인’의 구도로 몰아가기도 했다.

21일 실시된 콜롬비아 대선 결선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항구 도시 바랑키야에서 우파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쟈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한 커플이 입맞춤을 하고 있다. ‘정치 신인’인 데 라 에스프리에쟈는 집권 좌파 여당 연합 후보인 이반 세페다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돈로주의’ 더욱 탄력받을 듯

콜롬비아에 4년 만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반구(미주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도널드+먼로주의)’ 구상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자국으로 흘러 들어오는 마약을 차단하고, 중남미계 불법 이민자와 범죄 조직의 유입을 봉쇄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과 꾸준히 합동 수사와 군사 작전을 벌여왔는데 오랫동안 우파가 득세해온 콜롬비아는 그중에서도 핵심 파트너였다.

하지만 반미 성향이 뚜렷했던 현 좌파 정권하에서는 기존의 합동 작전과 안보 협력이 차질을 빚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선거를 앞두고 공개적으로 에스프리에쟈를 지원했다.

결선 투표를 앞둔 지난 2일 트루스소셜에 “에스프리에쟈는 현명하고 강인하며 단호한 지도자”라며 “그에 대한 완전한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에스프리에쟈 역시 선거운동 기간 내내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칭송하며 “내가 당선되면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 에스프리에쟈의 승리로 하비에르 밀레이(아르헨티나), 나이브 부켈레(엘살바도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칠레) 등 기성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이단아’들이 강성 우파 공약과 트럼프의 지지를 앞세워 대선에서 승리하는 흐름이 이어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경제난과 범죄 대처에 미흡한 좌파 정권에 대한 실망이 우파 재집권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결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와 치안에서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대선 결선 투표일인 21일 수도 보고타에서 투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편 물러나게 된 좌파 정권에선 불복 움직임이 일고 있다. 페트로 대통령은 X에 “선거관리위원회의 여러 서버에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가 변경된 증거가 있다”면서 “이는 소프트웨어가 해킹당해 다른 사람들이 투표소 데이터를 입력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에서 이같은 능력을 가진 나라는 이스라엘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개입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세페다는 에스프리에쟈가 약 3%포인트 내외로 이긴 1차 투표 직후부터 개표 결과에 의구심을 드러냈고, 결선 이후에도 재검표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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