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파리의 심판’처럼… 또 프랑스 꺾은 미국 와인
서울 기념행사서도 美레드와인 1위
소믈리에·셰프·가수 등 11명 참여


“라벨을 가리고 마시면 이 와인이 구대륙인지 신대륙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치 50년 전 ‘파리의 심판’을 오마주한 것 같아요.”(한희수 소믈리에·롯데백화점 치프 바이어)
‘서울의 심판’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 ‘더 블라인드’ 레드 와인 부문에서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구대륙 강자를 꺾고 이름도 생소한 미국 와인 ‘포스&그레이스 파소 로블스 카베르네 소비뇽 2023′이 1위를 차지했다. 1976년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 ‘파리의 심판’을 재현한 행사였는데 이번에도 무명 미국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이번 행사에서 순위 안에 프랑스 와인은 없었다. 우리나라 주요 와인 수입사 8곳이 참가해 총 50종의 와인을 출품했다. 화이트 와인 1위는 독일의 ‘셀바흐 리슬링 카비넷 파인허브 트레디션 2024′가 차지했다.
최근 ‘파리의 심판’ 50주년을 기념한다며 와인계에서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파리의 심판을 모티브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가 열리고, 해외 와인 회사 대표들이 연이어 방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협회 한국사무소는 ‘파리의 심판’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세계 와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 지금보다 더 자국 와인에 콧대가 높았던 프랑스인들은 당시 다른 지역 와인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스인 9명을 포함한 와인 전문가 11명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화이트 와인 1위는 ‘샤토 몬텔레나’가, 레드 와인 1위는 ‘스텍스립 와인셀러’가 차지했다. 둘 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었다. 프랑스산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선택한 와인이 모두 신대륙산으로 판명돼 프랑스 와인 치욕의 날이 된 것이다.
당시 현장을 단독 보도한 조지 M. 태버 전 타임지 파리 특파원은 훗날 저서 ‘파리의 심판’(RHK)에서 “프랑스인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와인에 높은 점수를 주고 미국 와인에 낮은 점수를 주려고 신중히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면서도 “‘야 정말 훌륭한 프랑스 와인이다’라고 말한 건 미국 와인이었고 ‘좋은 향이 없어 캘리포니아 와인이 확실하다’고 말한 건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은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칠레·아르헨티나 등 각국 와인이 세계적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며 “선입견을 벗어내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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