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하면 망한다”…JTBC 쇼크에 방송·콘텐츠 투자 ‘빙하기’ 우려
광고·가입자·송출수수료 동반 붕괴
정수기 렌탈 등으로 적자 메워
"낡은 규제 철폐·요금 자율화 필요"
SO 대상 '관리형 퇴출제' 제안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지금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은 ‘제작하면 망하고, 제작을 안 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현실이 됐습니다. JTBC 사태 이후 콘텐츠 투자 시장은 더 깊은 빙하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송미디어 구조변화에 따른 유료방송 정책 재정립 방안 마련’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하며 국내 방송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했다.
이 위원은 최근 불거진 JTBC의 유동성 위기와 콘텐츠 투자 축소 움직임이 개별 기업의 경영 문제를 넘어 방송·콘텐츠 산업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콘텐츠 제작 투자 위축이 현실화될 경우 제작사와 플랫폼, 장비·기술 업체, 프리랜서 창작자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콘텐츠 산업의 고용 규모도 적지 않다. 방송산업 직접 종사자는 2024년 기준 3만7427명이며, 웹툰을 포함한 전체 콘텐츠 산업 종사자는 68만8121명에 달한다. 방송사들의 투자 축소가 장기화될 경우 고용과 산업 성장에도 부정적 파급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방송사업 매출은 데이터를 취합한 이래 최초로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감소했다. 이 위원은 “1998년 IMF 외환위기나 2009년 미국 금융위기처럼 명확한 외부 충격이 없는데도 2년 연속 매출이 감소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며 “코로나 시기 외식산업에서 나타났던 시그널로 방송산업이 성숙기를 지나 확연한 ‘쇠퇴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가입자 수마저 반기 기준으로 감소하기 시작했고, 글로벌 OTT 시장은 넷플릭스를 필두로 빠르게 성장하며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위원은 “광고, 가입자, 홈쇼핑 송출수수료라는 국내 방송미디어의 3대 축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며 “향후 유료방송의 영업이익이 -70%까지 급격히 감소하는 경착륙 시나리오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플랫폼의 재정 악화는 방송사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방송사의 콘텐츠 투자 위축으로 연결된다.
이 위원은 “이미 방송 드라마 제작 횟수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JTBC 사태를 기점으로 이 감소 폭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볼 게 없어진 플랫폼에서 가입자가 더 빠져나가고 OTT 쏠림이 심화되는 악순환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플랫폼의 한 축인 케이블TV(SO)의 상황은 가장 심각하다. 정훈 청주대 교수는 방송사업과 비방송사업을 분리해 회계 분석한 결과, 케이블TV의 방송사업 영업이익률은 2022년 -6.65%를 시작으로 4년 연속 대규모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 전체 실적이 흑자로 보이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 부동산 임대, 정수기 판매 및 렌탈 등 비방송 사업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비방송 매출 비중은 이미 40.1%를 돌파했다.
정 교수는 “재무적으로 보면 사실상 정수기를 렌탈해 번 돈으로 방송 사업 적자를 겨우 메꾸고 있는 형국”이라며 “지난해 적자 폭이 일부 줄어든 것도 판관비를 12.2%나 깎아내 가입자 유치 마케팅마저 포기한 ‘불황형 흑자’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돈을 안 써서 적자를 줄이는 것은 산업 진흥이라는 규제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회계 데이터 검증 및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부담 체계를 ‘법인 매출’이 아닌 ‘종합유선방송(이익)’ 기준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콘텐츠 제공자를 상대로 협상력이 취약한 케이블TV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재원 한국방송학회 회장(동국대 교수)은 개회사를 통해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뉴스·오락 콘텐츠를 장악한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는 낡은 규제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며 “땜질식 처방이 아닌, 과거의 규제를 과감히 부수고 대한민국 방송미디어의 새로운 길을 여는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학계와 연구계는 단기적인 규제 완화 시범사업 프로세스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유료방송 요금 제도를 ‘자기완결적 신고제’로 개편하고 의무편성 채널 규제를 폐지할 것을 주문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사전 준비 없이 특정 사업자가 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발생할 이용자 피해와 생태계 충격을 막기 위해, 서비스 연속성을 보장하는 ‘관리형 퇴출 제도’와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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