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때 심장병 발병 는다… 자국 대표팀 경기 날 응급상황 더 많아
승패 따라 심장병 사망 위험 차이도
“축제는 즐기되 과몰입은 경계해야”

40, 50대 중·장년층에게 월드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2002년 한일 월드컵입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서 이탈리아, 8강에서 스페인을 연파하며 4강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 국민이 열광했습니다.
거스 히딩크는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표팀 감독으로 남았습니다. 16강 진출 확정 후 만족감에 취해 있던 선수단에게 "나는 아직 배고프다(I am still hungry)"라는 말로 투쟁심을 일깨운 장면은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회자됩니다. 주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를 잃지 않은 히딩크식 화법은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현역이었던 선수들은 현재 감독, 해설위원, 방송인으로 활약하며 대중과 가깝게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데다, 4년에 한 번만 열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신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최근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눈길을 끕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자국 대표팀의 경기와 심장병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렇지 않은 날보다 심장 관련 응급상황 발생 위험이 2.6배(남성 3.2배, 여성 1.8배) 높았습니다. 특히 경기 시작 후 2시간 이내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부정맥으로 입원하는 사례 역시 3배가량 증가했습니다.
브라질에서도 월드컵 기간 중 심장병 발병 위험이 평소보다 9% 증가했으며, 자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에는 무려 16%나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심장 질환의 연관성을 다룬 기존 논문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에서도, 국제 축구 대회가 열린 날에는 비치명적 급성 심장병 위험이 17%,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3% 상승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국 대표팀이 패배했을 때 심장병 사망 위험이 19% 상승한 반면, 승리했을 때는 오히려 12% 감소했다는 사실입니다.
1980년과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연고 팀이 출전한 미식축구 슈퍼볼 당일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됐습니다. 팀이 패배한 날에는 심장병을 포함한 모든 원인의 사망 위험이 높아졌으나, 승리한 날에는 전체 사망률이 낮아졌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 결정전인 일본시리즈 기간의 건강 상태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경기가 열린 날은 그렇지 않은 날에 비해 병원 밖 심장병 사망 위험이 3.3%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65세 이상 남성에게서 두드러졌습니다.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삶의 큰 활력소가 되지만, 과도한 몰입은 자칫 승리의 기쁨보다 더 큰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스포츠는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촉매제일 뿐,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승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축제 자체를 온전히 즐길 때 비로소 스포츠는 우리 삶의 진정한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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