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함마저 슬픈 ‘공장의 시어’

‘운이라는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안다. 하루에도 수 명이 일하다 죽고, 다치는 노동자가 넘치는 현실 앞에 이 말만큼 딱 맞는 말이 또, 있을까. 정년을 눈앞에 둔 지금 ‘운’이라는 말을 빼고 어찌 밥을 말할 수 있을까.’ - 시작 노트 중.
공장 노동자이자 시인. 두 가지 업을 쥔 채 살아온 경남 의령의 표성배 시인이 노동자로서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1995년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문을 연 그의 문학 세계 안에는 언제나 ‘노동’이라는 주제가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노동의 현장에서 보낸 세월의 길이만큼 노동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도 한결 더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
‘채소 칸 지나 어물 칸 돌아/ 닭들이 일렬로 누워 있는,/ 참 가지런하네/ 잘 정리된 제품처럼/ 정리정돈이 기본인 공장에서처럼/ 언제 어느 때든 누구나 쓸 수 있게/(…)/ 빈자리는 어느새 새로운 닭들로 채워지겠지요/ 돌아가는 라인 앞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 노동자처럼/ 발 없는 닭들이 참 가지런합니다’ - ‘가지런한 슬픈’ 중.
수록 시 ‘공장’을 통해 말하기를 시인에게 공장이란 ‘밥과 피와 눈물과 노래로 세운 콜로세움’이다. 노동자들의 수많은 감정들이 매일 성실하게 얽히는 공간이지만, 표 시인이 오랜 시간 지켜본바 공장의 실상은 슬프도록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단순하고도 확실한 체계 속에 줄 맞춘 부품이 되어가는 동료들의 모습. 그리고 너무나 쉽게도 사람을 비우고 채우는 현실. 소년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청춘의 대부분을 노동자로 살아온 시인이기에 그 단정한 비애를 끝까지 대변해 풀어낸다.
‘노동자에게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밥 때문이라면/ 그 길은 너무나 슬프고 슬픈 길’ - ‘너무나 슬픈 길’ 중.
장유진 기자 ureal@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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