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월드컵 현장 관찰기 ⑰] '눈의 수준' 맞추기… 박지성‧손흥민 없는 일본의 해답
<베스트일레븐> 몬테레이(멕시코)-양정훈 칼럼니스트

22시의 늦은 킥오프 시간 탓에, 경기 종료 후 호텔로 돌아오니 이미 새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이곳 현지 중계권자 'TUDN Mexico'의 유튜브 전체 경기 영상을 참고해 관전 소감을 작성해 봤다.
전반 4분, 자기진영 우측에서 올리며 빌드업을 하던 일본은 하프라인을 넘어서자 공격 전개의 속도를 급격하게 올렸다. 중앙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골문을 등지고 후방 패스를 이어받는 다나카 아오는 한번의 가슴 트래핑 후, 몸을 돌려 페널티 에어리어 내부로 침투해 들어가는 나카무라 케이토에게 다이렉트 패스를 넣었다. 나카무라 케이토는 순간적인 페인팅으로 수비를 따돌리고 왼발 낮고 빠른 크로스를 보냈다. 바로 이 순간과 뒤쪽에 위치하며 가속에 시동을 건 카마다 다이치의 문전 쇄도 이미지가 일치하며 일본의 선제골로 연결됐다. '표준적 눈의 수준'을 바탕으로 한 공간의 상호 이해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일본이 2-0으로 리드를 잡고 있던 후반 24분, 하프라인 아래 자기진영에서 볼을 잡은 다나카 아오는 최전방에서 약간 내려와 있는 우에다 아야세에게 낮고 빠른 전진 패스를 찔렀다. 아직 우에다 아야세의 발에 볼이 닿는 찰나와 이토 준야의 골문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질주의 스타트가 '동기화'를 이뤘다. 우에다 아야세는 일말의 지체 없이 다이렉트 패스를 연결했고, 마크맨과 골키퍼를 따돌린 이토 준야는 팀의 세 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성공적으로 맞아떨어진 공격 전개의 이미지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이 됐다. 결국 일본은 튀니지를 4-0으로 제압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골 장면을 묘사하면서 쓰인 '표준적 눈의 수준', '아름다움', '동기화'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언급할 필요가 생긴다.
축구에서 전술은 가이드 라인이다. 전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여러 가지 세부적인 약속들이 수행된다. 하지만 전술은 영화가 아니다. 축구에는 한 장면, 한 장면이 타임라인을 따라 고도로 정밀하게 짜인 각본이 없다. 연습한 바와 최대한 비슷한 상황에서 사전에 논의된 플레이를 펼친다. 상대적인 스포츠 축구에서 90분의 대부분은 사전의 구상과 '딱' 들어맞지 않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따라서 전술을 토대로 그 안에서 어떻게 창의적으로 경기를 운용하는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때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전술의 범위를 넘어서는 파괴가 일어난다. 그렇더라도 조직력이 뒷받침된다면 일탈이 아닌, 창조적 플레이로 수렴할 수 있다.

조직력은 동료 선수들 사이의 신뢰를 통해 더욱 굳게 다져진다. 축구를 읽어내는 '눈의 수준'이 팀 전체에서 동기화되면 비로소 진정한 조직력이 움튼다. '눈의 수준'은 급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축구를 막 시작하는 유소년부터, 선수로서의 정점인 국가대표까지 연속성을 지닌다. 그 연속성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에는 선수, 미디어, 관계자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 국민이 관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스한 순간을 패스할 순간이었다 인정하고, 드리블한 순간을 드리블한 순간이었다고 판단하며, 슈팅한 순간을 마땅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치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약속한 듯 동시에 박수를 보내며 수긍하는 '눈의 수준' 동기화는 그 나라의 축구 문화와 축구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월드컵 대표팀 선수가 '눈의 수준'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창의적 퍼포먼스를 선보였을 때, 즉각적이진 않더라도 사후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근거 또한 다름 아닌 이 '눈의 수준'이다. '축구를 잘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이 '눈의 수준'은 일반적인 문화현상처럼 다양성과 관용이 미덕이 아니다. 곧,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눈의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일종의 바람직한 표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일본은 그 표준을 오랜 기간 꾸준히 정립해 왔다. '눈의 수준'이 표준에(혹은 표준에 근접하게) 맞춰지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라운드 위의 신뢰가 구축된다. 신뢰는 조직력을 다지고, 조직력은 전술을 꽃피게 한다. 박지성, 손흥민 등 초월적 축구천재들을 보유하진 않은 일본이 세계적인 강팀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이유다. 물론 뛰어난 영재들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표준적 눈의 수준'은 그라운드 위 사람과 볼이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동료가 공간에 내준 패스를 본 뒤 따라가거나, 빈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동료를 본 뒤 패스를 넣는 플레이 등은 비록 이른 시간 안에 이뤄진다 해도 '눈의 수준'이 높은 상대에겐 읽히고, 또 저지당할 가능성이 크다. 공간으로 파고드는 선수와 그곳으로 패스를 내는 선수가 그리는 공격 전개의 이미지가, 동기화된 '표준적 눈의 수준'에 의해 공유되어 일치하는 정확히 타이밍을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찌릿한 전율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축구'가 성립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패스 연쇄가 극강의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내고, 이로써 득점 확률과 승리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게 된다. 물론 불확실성의 축구이기에 '아름다운 축구'에 이르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가는 국면의 플레이들 역시 적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리스크 챌린지'를 시도할 수 있는 건 표준적 '눈의 수준'을 공유한 다른 동료 선수가 반드시 커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준적 '눈의 수준'이 근래의 일본 대표팀, 적어도 북중미 월드컵에 참가한 사무라이 블루가 품은 '강함의 본질'이라 여겨진다.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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