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감축설에도 덤덤한 독일..."'1발 30억원' 토마호크 취소가 더 걱정" [숨은유럽찾기]

정승임 2026. 6. 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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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독미군 감축 선언 파장 한 달
트럼프 "주독미군 5000명 감축" 발언 후
람슈타인에서 열린 독일·미군 친선축제서
주민들 지역경제 타격 우려에도 평온 유지
정치권도 "예견된 일, 1기 때도 감축 공식화"
러 억제할 토마호크 미사일 철회가 더 걱정
유럽에 지상발사 장거리 미사일 체계 전무
이란 전쟁 때 물량 소진, 돈 주고도 못 산다
편집자주
혹시 여행으로만 유럽을 경험하셨나요. 매월 연재하는 '숨은유럽찾기'에선 평온한 관광지에선 볼 수 없는 유럽 각국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드립니다. 드러난 뉴스의 이면도 들여다봅니다. 때론 불편한 진실이 우리에게 피와 근육이 됩니다.
지난달 8일 금요일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 기지를 향해 미국 공군 수송기가 접근하고 있다. 람슈타인=AP 연합뉴스

“미군 감축 말고도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독미군 5,000명 이상 감축”이라는 폭탄선언을 한 지 한 달여가 흐른 이달 6일, 미 본토 밖 최대 공군기지가 있는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람슈타인의 존 F 케네디 광장에선 올해 8회째 맞는 독일·미군 친선축제가 한창이었다. 냉전 시기 서독을 지지했던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곳이다. 인근 젬바흐 지역에 주둔하는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사령부 군악대(USAREUR-AF Band) 공연이 시작되자 현지 주민들은 “끝내준다(어메이징)”고 환호하며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췄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미군 감축 우려로 축제가 침울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아내와 함께 축제장을 찾은 얀 랑네는 “트럼프가 그간 위협적인 말을 많이 했지만 실제 이뤄진 건 별로 없지 않느냐”며 “그것이 주민들이 평소처럼 축제를 즐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물론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미군이 이곳을 떠나면 대출을 끼고 집을 사 미국인들에게 임대해준 주민들은 파산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지에서 만난 미군 상당수는 주한 미군기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 공군기지에서 근무했다는 토니(62)는 ‘한국 매체에서 취재를 왔다’는 기자의 말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주한미군 감축 우려로 번진 것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군에서 전역한 뒤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그는 “주민들이 우려하는 건 커뮤니티 붕괴”라며 “미군이 떠나면 이곳의 식당, 카페, 세탁소는 거의 문을 닫아야 하고 많은 이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기에 주민들은 평소처럼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지난주 인근 카이저슬라우테른 인근 기지에서 있었던 친선 축제도 성황리에 치러졌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가 언급한 카이저슬라우테른 주변과 람슈타인, 란트슈툴에 있는 미 육·공군 기지를 묶어 카이저슬라우테른 군사 커뮤니티(KMC)라 부르는데 유럽 최대 규모의 미군 공동체인 이곳에는 미군과 그 가족 약 5만4,000명이 거주한다.

람슈타인에서 기차로 5분 걸려 도착한 란트슈툴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해외 최대 미군 병원 소재지로 최근 미국·이란 전쟁에서 다친 미군들이 이송돼 치료받은 곳이다. 란트슈툴에서 유명한 치킨 전문점 ‘쇼윙즈’의 매니저 칼 마루즈 레코프스키(48)는 기자에게 “이젠 아무 생각이 없다”며 “트럼프 발언 이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주 고객으로, 미국·독일 우호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곳 출입구엔 미 성조기와 독일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고 벽 한편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자리해 있었다.


옛 서독 지역에 3만6000명 주둔

6일 미군과 독일의 우호 상징으로 통하는 독일 란트슈툴의 치킨전문점 쇼윙즈 벽에 걸린 역대 미국 대통령 초상화. 이 지역에는 해외 최대 미군병원이 있다. 란트슈툴=정승임 특파원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160만 명에 달했던 주독미군은 1년 후 3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냉전이 도래하면서 미군의 주요 역할도 패전국 점령지 관리에서 소련군 견제로 바뀌었다. 당시 서독은 동구권과 국경을 맞대는 최전선이었다. 1990년대 독일 통일과 냉전 종식 이후 그 규모가 대폭 줄어 현재의 3만6,000명 수준에 이르렀다. 주둔지도 KMC가 있는 라인란트팔츠주를 비롯해 바이에른·바덴뷔르템베르크주 등 서남부 지역에 한정됐다. 1990년 통일 당시 동·서독과 미국·소련·영국·프랑스가 맺은 '2+4조약'에서 옛 동독 지역에는 외국 군대를 배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람슈타인 친선 축제에서 공연한 군악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사이 주독미군의 활동 반경은 유럽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 지역까지 확대됐다.


독일 정치권 “이미 예견했던 일”

6일 미 본토 밖 최대 공군기지가 있는 독일 남서부 람슈타인의 존 F. 케네디 광장에서 열린 독일∙미군 친선축제에서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사령부 군악대(USAREUR-AF Band) 가 공연을 하고 있다. 람슈타인=정승임 특파원

트럼프 행정부의 주독미군 감축 계획에 “이미 예견 가능했던 일”이라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의 발언처럼 독일 정치권도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4월 말 이란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전략 부재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의 발언은 명분으로 활용됐을 뿐,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라도 주독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증강했던 유럽 파병 병력을 줄일 필요가 있었고,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꾸준히 비판해온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인 2020년에도 주독미군 1만2,000명 감축 계획을 밝힌 전례가 있었다. 다만 당시 계획은 의회 반대와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좌절됐다.

독일이 그간 군사력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것도 자신감의 바탕이 됐다. 지난해 2월 총선 당시 “독일 연방군을 유럽 최대 정규군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메르츠 총리는 한 달 뒤 국방비 한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푸는 기본법(헌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유럽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독일은 내년 국방비도 28% 증액해 유럽에서 처음으로 1,000억 유로를 넘기게 됐다.


오히려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

6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에 위치한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 미 본토 밖 최대 공군기지인 이곳에는 유럽·아프리카 미 공군 사령부가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항공 작전 수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람슈타인=정승임 특파원

미국의 전략적 이익 때문에 독일에서 전면 철수는 불가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미군 상당수가 독일 방어를 돕기보다 전 세계에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서다. 유로뉴스는 람슈타인 기지처럼 미군의 작전과 병력 전개에 있어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는 주둔지에선 병력을 감축하거나 줄이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일례로 중동 지역에서 무인기(드론) 작전을 하기 위해 데이터 연결과 위성 중계를 하려면 미 본토보다 람슈타인 기지를 경유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에서 직접 통제할 경우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미 존스홉킨스대 미독 연구소(AGI)의 제프 래스케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람슈타인과 같은 기지가 없었다면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미국이 많은 작전을 수행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며 “미군의 유럽 주둔은 자선 기부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했다.


”문제는 토마호크 배치 취소다”

2018년 12월 27일 이라크 방문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전 방문한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장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설령 미군 감축으로 남서부 지역 경제가 위축되더라도 이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독일의 거시 경제를 흔들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독미군 감축을 공식화하면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운용 부대 배치도 백지화한 것이다. 2024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은 독일에 토마호크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기로 약속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트해의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해 베를린을 위협한 데 따른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유럽에는 즉시 사용 가능한 지상 발사형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이 없다. 영국은 사거리 1,600㎞의 잠수함 발사 토마호크 미사일을, 프랑스 역시 자체 개발한 사거리 1,000㎞의 순항미사일을 잠수함에 배치했을 뿐이다. 지상에 사거리가 1,800㎞에 달하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배치하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함정을 유럽에 묶어 두지 않고도 훨씬 저렴하게 적국 내부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화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제공하는 심층정밀타격(DPS) 능력의 장점으로 △전략적 기반 시설을 위협해 적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고 △핵 공격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에 준하는 보복이 가능하며 △분쟁 발생 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공군 기지나 미사일 격납고 등 적의 주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러시아가 드론 500대를 보내기 전에 드론 공장을 공격할 수 있다”는 논리다.

6일 미군과 독일의 우호 상징으로 통하는 독일 란트슈툴의 치킨전문점 쇼윙즈 입구에 미 성조기와 독일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이 지역에는 해외 최대 미군병원이 있다. 란트슈툴=정승임 특파원

유럽이 이 전력을 사전에 확보하지 못한 건 1987년 미국과 소련이 맺은,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미사일(해상 및 공중 발사 제외) 배치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때문이다. 해당 조약은 미국이 2019년 러시아의 반복적인 위반을 이유로 탈퇴하면서 효력을 잃었다.

토마호크 미사일 부대 배치 취소로 독일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발당 170만 유로(약 30억 원)에 달하는 이 미사일의 전력 공백을 메우려면 더 많은 국방비를 써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면서 물량을 많이 소진한 탓에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데 있다.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와 유럽산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인 엘사(Elsa)를 추진하고 있지만 상용화까진 10년이 더 걸린다.

독일 집권여당인 기독민주(CDU)·기독사회(CSU) 연합의 외교정책 대변인인 위르겐 하르트 연방의회 의원은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우리의 고민은 토마호크가 아닌 유럽 내 다른 무기 체계가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구매가 됐든, 라이선스 생산이 됐든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람슈타인∙란트슈툴=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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