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로봇 "실리콘밸리도 못 따라온다"... 인간 기록 깬 로봇 뒤엔 [인터뷰]
'로봇의 눈' 오르벡, 하워드 황 CEO 인터뷰
"마라톤 우승 로봇들, 모두 우리 센서 사용
로봇 생태계→발전... 중국 로봇, 더 커질 것"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4월 19일 중국 베이징 이좡경제개발구 퉁밍후 공원에서는 올해 2회째를 맞은 '베이징 이타운(E-town)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이 열렸다. 300대 이상의 참가 로봇 중 '번개'라는 뜻을 가진 '산뎬'이 우승했다. 산뎬은 21.0975㎞를 50분 26초에 완주했다. 인간이 세운 세계기록(57분20초)보다 빨랐다.
키 169㎝, 무게 45㎏인 산뎬의 다리에 관중들의 시선이 빠르게 꽂혔다.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균형을 잘 잡는지 집중한 것이다. 로봇 전문가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로봇의 눈인 센서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제대로 봐야 제대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뎬은 빠른 속도에도 균형감을 유지하며 주저 없이 달렸다.
"산뎬에 저희 3D 비전 센서가 탑재됐어요." 닷새 뒤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기업 '오르벡' 본사에서 만난 플로라 레이 홍보 매니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산뎬은 오르벡의 '제미나이 330 시리즈 스테레오 비전 3D 카메라'를 사용했다. 자율주행 방식으로 달린 산뎬은 도로의 경사와 굴곡, 장애물, 주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했다. 3D 비전 센서는 이런 정보를 깊이값으로 읽어 로봇의 경로 판단과 자세 보정에 활용될 기초 데이터를 제공한다. 지난해 경기에서 우승한 로봇 '톈궁'도 오르벡의 3D 카메라를 썼다.
한국일보가 오르벡을 찾아가 인터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봇의 속도는 완성품을 만드는 기업의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각종 부품, 알고리즘 등의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가능하다. 오르벡은 그중 로봇의 눈에 해당하는 3D 비전 센서 분야에서 중국 로봇 생태계의 힘을 보여주는 기업이었다. 오르벡은 지난해 말 기준 1,967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오르벡이 선전에 본사를 둔 이유도 '로봇 생태계' 때문이다. 2013년 오르벡을 설립한 하워드 황 최고경영자(CEO)는 "선전은 세계적인 스마트 하드웨어 허브이자 오르벡 고객들이 집중돼 있는 곳"이라며 "선전에서는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상호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오르벡 본사는 선전 난산구에 자리하는데, 이 일대는 현지에서 '로봇 밸리'로 불린다. 난산구에 따르면 로봇 밸리에는 산업체 200여 곳이 모여 있다. 한 기업에서 발견한 문제를 다른 기업 테스트베드에서 바로 재현하고, 부품을 바꿔 다시 실험하는 식의 협업이 가능하다.
황 CEO는 빠른 시제품 제작 속도도 강조했다. "선전에서는 단 며칠만 주어지면 시제품 제작이 완료되는데, 미국 실리콘밸리 등 다른 도시에선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리스 짜오 오르벡 마케팅 총괄은 "오르벡의 최대 경쟁력은 3D 비전 센서의 핵심 기술을 자체 개발하면서도 이를 제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다. 촘촘한 로봇 생태계 속에서 성장한 오르벡은 2022년 기술혁신 기업 전용 주식시장인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科創板·과창판)에 상장한 뒤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은 9억4,074만 위안(약 2,113억 원)으로 전년보다 66.66% 늘었다.

로봇 시장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질 게 확실하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 380억 달러(약 58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 산업이 발전할수록 생태계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짜오 총괄은 "로봇 산업은 센서와 부품, 소프트웨어, 제조, 실제 적용 현장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며 "로봇 생태계를 촘촘하게 구축한 선전, 그리고 선전과 같은 도시를 여럿 갖춘 중국의 로봇 산업은 더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톈궁의 지난해 기록은 2시간40분42초였다. 1년 만에 산뎬은 이를 50분 26초로 줄였다. 인간의 기록을 깨는 시점은 한참 뒤로 예상됐지만 1년 만에 해냈다. 지난해 완주에 성공한 로봇은 6대였지만 올해는 47대나 됐다. 이런 눈부신 속도를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연관된 기술이 한 공간에서 맞물리고 서로를 이끌어가는 생태계가 로봇의 속도를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26 차이나 리포트
-
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
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
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
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
⑤ <5> 중국 과학굴기 해부: 기술 포비아는 없다
-
⑥ <6> 중국 과학굴기 해부: 공산당의 뚝심
-
⑦ <7> 중국 과학굴기 해부: 어두운 한국 연구실
-
⑧ 한국일보 '차이나 리포트'를 읽고
선전=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부전선서 북한군 1명 야간 남하...'경계선 작업' 중 이탈 가능성도-정치ㅣ한국일보
- "기강 잡겠다"는 장동혁, '투톱' 정점식과도 '삐걱'… 재신임 투표론 급부상-정치ㅣ한국일보
- "본투표 이틀로 확대, 개표는 투표 다음 날"... 선관위 노조, 與에 개혁안 보고-정치ㅣ한국일보
- 정청래, 결국 李와 각 세우나… 전당대회 '노선 전쟁' 시작됐다-정치ㅣ한국일보
- "사정 있었다" 현직 의사가 본 '요양병원 다리 절단 사건'... "적어도 환자 외면 안 한 것"-지역ㅣ
- 연평부대 찾은 이 대통령, K2 소총 10발 적중 이어 K9서 '실사격 포즈'-정치ㅣ한국일보
- 손흥민도 40세까지?… 스포츠 과학·자기관리로 수명 늘린 ‘불혹’의 전성시대-스포츠ㅣ한국일
- "하룻밤 묵으면 10만 원 준다"... 지방 관광객에 돈 돌려주는 이유는-사회ㅣ한국일보
- '반도체 호남 시대' 6가지 걸림돌…성과급 주고 수백조 투자? 충남·용인은?-경제ㅣ한국일보
- "한국에서 과학자 하면 바보"… 우울한 과학고 동창회 뒤에는-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