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 우습게 봐” 분노한 인스타 청년들, 광장에서 극우와 만나다

2026. 6.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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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권리 못 누리게 된 게 문제”…집회 참가 30대 이하 15명 인터뷰
‘탈정치’로 시작했다 집회 장기화하며 양상 변화…음모론엔 반응 엇갈려
6·3 지방선거에서 일어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비판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6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광호 기자

“참정권은 국민의 기본권인데 왜 의무는 지게 하면서 권리는 지켜주지 않는 걸까요?”

6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 집회에 참가한 여성 A씨(29)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문제점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 반차를 내고 집회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중도이고, 이번 사태로 집회도 처음 참석해봤다며 “여기도 정치색이 다들 없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서 더 편하게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대화가 길어지자 부정선거론에 대해 “다 알고는 있다”며 “(증거를 찾으려고) 일부러 투표 사무원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청년층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번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특징 중 하나다. 그중 사태 초기 관심을 모은 건 집회에 나올 정도로 적극적인 2030세대의 목소리였다. 이 청년들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주간경향은 재선거 요구 집회가 한창이던 6월 8일과 9일 집회 현장을 찾아 참가자 중 30대 이하 청년 15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집회에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정치적 신념보다 ‘내 권리가 침해됐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인스타그램 등 SNS가 전하는 참정권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영상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탈정치를 표방했던 청년들은 광장으로 나와 부정선거론과 만났다. 이에 동조하거나 이탈하거나, 청년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6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한 부스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붙인 피켓. 문광호 기자
“당연한 권리가 무너졌다”…청년들 분노한 이유

청년 참가자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당연한”이었다. 청년들은 투표권이 보장되지 못한 것을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절차의 훼손’,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로 본 것이다. 재선거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여성 B씨(24)는 “당연했던 권리를 못 누리게 된 건데 당연히 문제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만 집회에 참가한 청년 중에는 이전부터 선관위를 불신하거나 부정선거 관련 의혹을 접한 경험이 있었다고 밝힌 이도 많았다. 이들에게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새로운 문제라기보다 기존 의심이 현실에서 확인된 사건인 셈이다. 집회에 처음부터 참가했다는 20대 여성 김모씨는 “원래도 선관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SNS에서도 중국 개입설, 공산화 우려 등 기존 부정선거론자들의 콘텐츠가 확산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접하는 관련 정보도 부정선거론에 기반한 자료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언어로 나타났다.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를 만나러왔다는 취업준비생 C씨(27)는 “투표를 못 한다는 건 공산당 (독재) 아닌가”라며 “시민이 사람을 뽑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게 투표밖에 없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고등학생 김모양(17)은 “나라가 점점 공산화돼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청년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는 불만도 젊은 세대가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긴 계기가 됐다. 여자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남성 D씨(28)는 “어차피 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정부한테 하고 싶은 말도 없다”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왔다”고 했다. 청년들이 주축이 돼 만든 카카오톡 현장소통방에서는 “국민을 우습게 본다”, “참정권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분노가 여과 없이 분출됐다.

일부 참가자들은 취업난, 집값 상승, 양극화 등 청년층의 불안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점이 원인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집회에 참가한 직장인 서모씨(34)는 “이번 기회에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인스타그램 게시물. 인스타그램 ‘hakuna_news’ 갈무리
“탈정치” 인스타그램 보고 광장으로

6월 3일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기존 선관위 불신층에는 ‘의혹의 확신’, 부실 선거 정도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거나 무관심했던 층에는 ‘불신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다. 집회 참가자 C씨는 “이전부터 정보가 가려진다는 의심과 여러 정황이 쌓이고 쌓이다가 이번 사건을 통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참석한 E씨(30)도 “원래도 (선관위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더 명확히 드러난 것 같아서, 이건 힘을 다 모아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SNS는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오고 조직하는 통로가 됐다. 대전에서 온 한모씨(29)는 “언론이 다 먹혀서 네이버나 그런 데는 (이 문제가) 잘 안 나오지 않나”라며 “인스타를 보는데 내리면 내릴수록 더 심한 게 나와서 나왔다. 밤에 약간 ‘빡(머리의 속어)이 돌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한씨는 “SNS를 통한 정보 수집이나 행동 전파 같은 것도 빠르니 청년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정보사이트 바이럴파인더를 통해 투표용지 관련 게시글 조회수 상위 50건을 분석한 결과 ‘새벽 5시에 출근 준비하는 워킹맘인데 경찰과 대치 중인 평범한 주민들을 보니 잠이 안 와서’라는 ‘숏폼’(짧은 길이의 영상), “제발 나와주십시오. 저희가 바꿔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청년 영상 등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태의 경위보다 감정적 호소에 집중한 짧은 영상들이 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탈정치화 구호는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청년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집회 초기 2030 참가자들은 “재선거, 참정권 침해만 외쳐달라”, “태극기만 흔들어달라” 등을 외치며 집회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팔에 태극기를 그린 채 집회에 참가한 F씨(25)는 “이건 민주주의를 침해당한 거라 정치, 좌우와 상관없이 다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잠실 시위 단체대화방 내에서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정당의 당원 모집과 홍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어느새 “부정선거”…달라진 시위 양상

그러나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구호는 “부정선거”, “Stop the steal”, “당일투표 수개표” 등으로 확대됐고, 성조기를 흔드는 것도 허용됐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으로 몰고 비난을 퍼붓는 모습도 관찰됐다. 6월 8일 현장에서도 여우가면에 일본식 복장을 한 시민이 집회에 나타나자 주변에서 “대진연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참가를 막았다. 한 청년은 지나가며 “어디 대진연 XX 더 없나”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곳곳에 나붙은 성명문과 대자보에는 부정선거론자들이 주장하는 증거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욕설과 비하 등이 적혔다.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 전씨의 지지자들이 6월 12일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인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잠실7동 제2투표소에 보관돼 있다 사라진 투표용지 보관상자 중 1개를 제보를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상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정선거론자들은 다년간 축적한 집회·시위 인프라를 가동했다. 대표적인 부정선거론자인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는 페이스북으로 참여를 독려했다. 6월 10일에는 전한길씨,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 민경욱 전 국회의원 등이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기도 했다. 또 유튜버들은 사태 초기부터 빠르게 잠실투표소, 올림픽공원으로 향해 현장 상황을 촬영해 중계했다.

앞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대전에서 상경했다던 한씨도 시위를 경험한 뒤 부정선거론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 그는 “여기 부정선거 정황 (대자보) 붙어 있는 것만 읽어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며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집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너무 평화적이고 축제 같다. 감독이 잘돼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잠실 시위에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하는 모습을 근거로 극우 종교계의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극우 활동을 추적해온 ‘카운터스(극우 추적단)’는 6월 11일 X에서 “잠실 시위는 이제 극우 교회만 남았다. 1020 극우화 핵심축은 교회인데 이 부분이 많이 간과된다”며 “이 싸움은 온라인 공간을 잡는 세력이 이긴다”고 분석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6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극우와는 다르다”…갈라서기 선택한 청년들

일부 청년들은 부정선거론과 선을 긋고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참정권 보장’ 요구에만 집중하자는 이들이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참정권 갤러리’와 단체대화방을 개설했다. 이들은 핵심 의제로 ‘참정권 수호, 기본권 수호, 국민 주권 수호, 선관위 개편 및 수개표 도입’을 정하고 좌·우파 색채 언어, 특정인 비하, 특정 국가 혐오 등을 금지했다. 6월 13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는 태극기를 제외한 모든 깃발을 금지하고 ‘재선거’ 피켓만 허용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참정권 침해에는 분노하지만 부정선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대학생 윤모씨(22)는 “잠실 시위대 사람 중 이재명 탄핵을 외치거나 하는 극우가 다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참정권 박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모두 극우로 보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 같다. 계엄령을 겪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민주주의가 침해된 (또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해 분노하는 20대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2·3 불법 계엄처럼 선관위의 행정 실패 역시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된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론에 선을 긋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1인 대자보를 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김민수씨(22)는 “대자보를 올린 후 주변에서 정말 많이 연락이 왔다”며 “‘너무 논의가 부정선거로 치우치는 것 같아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명확하게 짚고 구분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들을 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를 논하되 음모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년 아니라 보수 특징…탈정치라면서 정치적”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의 특징을 젊은 세대의 특징으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대 프레임의 위험성을 지적한 책 <세대게임>의 저자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 이슈를 보수 우파 청년들이 더 발 빠르게 잡아챈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자신들(보수 우파)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극우로 몰릴까봐 억눌렸던, 정치적으로 소외됐던 이들이 정면에 나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년세대 내 분화가 아니라 극우와 보통 보수의 분화가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 올림픽공원에서는 ‘부실’ 선거론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줄었고,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처럼 되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하에서 세력 상실의 위기를 느낀 극우파 입장에서는 일종의 ‘서부지법화’를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탈정치 주장에 대해서도 “전 세계적으로 보수의 특징이 ‘자신이 정치적이지 않다’고 한다는 점”이라며 “비정치적, 절차의 공정성이라고 하는 허울을 쓰고 현 정부,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지 않나. 이 사태가 진영논리에 의해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 극우는 멀리 있지 않다…‘잠실’이 말하는 정치의 빈자리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220600001


☞ 대자보 전수 분석해보니…부정선거커녕 ‘재선거’ 요구도 드물었다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220600021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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