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半)우울’은 희망의 언어”…무너지려는 마음에 이름 붙인 日 정신과 의사

윤예원 기자 2026. 6.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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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울은 우울증 전 단계 ‘미병(未病)’ 상태
3개월 내 돌보면 회복 가능
“우울증은 감기 아닌 골절… 초기 휴식이 회복 좌우"

모든 것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썼다. 이름이 없을 때 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몸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름을 얻는 순간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고 의미를 갖게 된다.

「반우울(半うつ)」저자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이라 고겐 작가./본인 제공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공황장애, 번아웃,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이름이 없던 시절에는 개인의 나약함이나 성격 문제로 치부됐던 상태가 이름을 얻으면서 비로소 치료와 돌봄의 대상이 됐다.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이라 고겐(58) 작가가 「반우울(半うつ)」을 쓴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이라 작가는 우울증으로 진단되지는 않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상태를 반우울이라고 이름 붙였다. 병은 아니지만 건강하지 않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균열이 시작된 상태가 반우울이다. 책의 부제처럼 ‘우울감 이상, 우울증 미만’인 상태다.

다이라 작가는 ‘반우울’을 통해 감성적인 위로를 전하지 않는다. 대신 의학적인 근거를 들며 독자에게 왜 ‘마음 돌봄’이 필요한지 설득한다.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반우울이 병명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희망의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번아웃과 반우울의 차이는 무엇인가.

“번아웃은 일이나 특정 환경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고갈 상태를 말한다.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돼 움직이기 어려워지고, 원인도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본인과 가족이 알아차리기 쉽다. 반면 반우울은 생활 전반에서 뇌 기능이 만성적으로 저하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무너진 단계는 아니다. 그래서 본인도, 가족도 알아채기 어렵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실제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바꿀 수 있나.

“이름이 없으면 마음이 보내는 ‘힘들다’는 경고를 ‘그냥 좀 피곤한가 보다’, ‘내가 의욕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여기고 방치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우울증까지 진행될 수 있다.

만약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우물에 빠지는 것’에 비유한다면, 반우울은 ‘이대로 가면 우물이 있으니 위험하다’는 이정표와 같다. 이정표가 있으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울증으로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우울(半うつ)」/서교출판 제공

-반우울 상태에서는 어떤 치료가 필요한가.

“약물치료를 종종 장갑에 비유한다. 강한 세제로 손이 거칠어졌을 때 장갑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손을 낫게 하는 것은 장갑이 아니라 우리 몸의 자연 치유력이다.

마음이 거칠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약이라는 장갑을 아무리 끼워도 마음속에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치료 과정에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울증에 이르면 완전한 회복까지 평균 1년 정도의 시간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우울 단계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책에서 소개한 자기 돌봄 실천만으로도 대체로 3개월 정도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반우울 단계에서 도움을 받으러 온 분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의 치료와 상담만으로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반우울‘ 상태 역시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치료에 효율적 아닌가.

“동양의학에는 ‘미병(未病)’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직 질병은 아니지만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상태를 뜻한다. 반우울 역시 정확히 그런 상태다. 이 단계에서 적절히 돌보면 질병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휴식마저 성과처럼 관리한다. 이런 ‘휴식 강박’ 역시 반우울 상태인가.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강박적인 사고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휴식에 대한 강박 역시 반우울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사람들은 쉬라고 말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깨어 있을 때는 쌀을 소비하는 소비자처럼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하며 생각하고 일한다. 반대로 잠을 잘 때는 쌀을 생산하는 농부처럼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뇌를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제대로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휴식의 중요성을 받아들인다."

-한국에서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기보다 ‘마음의 골절’이라고 생각한다. 골절이 생겼을 때 초기에 깁스하고 충분히 쉬면 한 달 정도면 뼈가 붙는다. 복잡골절이라면 석 달 정도 걸릴 수도 있다. 이후 약해진 근육을 재활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우울증도 비슷하다. 충분히 쉬어야 하는 시기에 쉬지 않으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감기보다 골절이라는 비유가 우울증의 심각성과 회복 과정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회복기에 접어든 사람이 오히려 자살 위험이 크다고 했다.

“우울증은 일정한 순서를 따라 회복된다. 먼저 짜증이 줄고, 불안이 줄어들고, 그다음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가 회복된다.

문제는 삶의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끼는 능력은 그보다 나중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아직 삶이 즐겁다고 느끼지는 못하지만 행동할 힘은 생긴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자살이라는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먼저 회복되는 것이다.

우울증 초기에는 죽고 싶어도 실행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돼 있다. 그러나 회복기에는 행동할 힘이 먼저 돌아오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반우울 상태에 있는 것 같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나.

“우울증 환자의 가족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은 일반인보다 약 10배 높다고 알려져 있다. 환자의 감정 기복에 지나치게 함께 휘말리면서 지치기 때문이다.

반우울도 마찬가지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에 동조하면 안 된다. 반우울 상태의 사람이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다고 가족도 함께 탈 필요가 없다. 대신 회전목마를 타면서 평온함과 여유를 보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큰 안심이 된다.

물론 “힘내라”, “정신 차려라”, “기운 내라” 같은 격려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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