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전으로 돌아가는 연준? 금리 방향 ‘힌트 주기’ 없애는 워시
워시는 경제 전망 제시에 부정적
“비단 장갑 낀 듯 부드럽지만 혁명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를 이끌게 된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이 선보인 청사진이 월가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그는 17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뒤 내놓은 성명서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 갈 연준의 모습을 내비쳤는데, 예상보다 급진적이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부드러웠던 겉보기와는 달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착된 연준 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려는 모습을 내비쳤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워시가 취임한 이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는 제롬 파월 전 의장 때와 많은 부분이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었다. 연준은 금리 결정 회의를 마친 뒤 결정된 금리를 공개하는 성명서를 내놓는다. 이번 성명서에는 132개의 단어만 담겨 직전인 지난 4월 성명서(246개 단어)에 비해 가벼워졌다. 워시도 “조금 더 짧고, 조금 더 단순하며, 일부 오래된 문구를 버렸다”며 성명서 내용을 대폭 줄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시장이 주목한 부분은 정책 방향에 대해 힌트를 주는 문구인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의 삭제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등장했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연 0~0.25%)까지 낮추며 더 이상 내릴 여지가 없었다. 그러자 성명서에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앞으로도 금리를 낮게 유지한다”는 방향을 알려주며 금리를 낮게 형성하도록 유도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제시하는 문구를 통해 금리를 예측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성명서에 더 이상 이를 담지 않기로 했다.
또 연준 위원 19명이 향후 금리 수준을 전망하는 ‘점도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점도표는 2012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시절 도입됐다. 포워드 가이던스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방향타를 제시하지만, 워시는 이번 회의에서 자신의 전망치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워시 체제하에서 연준은 향후 금리 전망을 지금과는 다르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엔 연준 역할에 대한 워시의 평소 신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워시는 향후 금리 전망에 대해 연준이 자세하게 설명하는 현재 관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가이던스와 점도표를 통해 개별 위원의 개인 전망을 내놓으면 연준이 이에 얽매여 오히려 활동 반경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인플레이션 변동성이 커진 환경에서 경제 전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뢰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워시가 추진하는 방향을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전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로레타 메스터는 “어떤 문구나 문장이 일단 (연설문에) 들어가면 빼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상투적인 언어를 많이 제거했다”고 했다. 반면 JP모건 자산운용의 최고 투자 책임자 밥 미셸은 “더 적은 투명성은 더 많은 추측, 더 많은 불확실성, 더 많은 변동성, 더 많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의미한다”고 했다.
비록 워시가 이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고 점도표도 유지하는 등 예상보다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연준을 수술대에 올려 대규모 개혁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 위기 이후 이어진 연준 의장 정례 기자회견도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 CNBC는 워시에 대해 “비단 장갑을 낀 정권 교체”라면서 “조용한 혁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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