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 장 보다 돌진 트럭에… 지적장애 아들은 생명 셋 살리고 떠났다
커피·베이킹 좋아하던 정 많은 20대 청년
아버지 생신상 장 보던 중 트럭에 참변 당해
뇌사 상태에서 장기기증으로 세 생명 살려
장제비·의료비 540만 원은 복지관에 기부
편집자주
한국일보 'Story'는 곱씹을만한 이야기를 내러티브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삶에 대해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사고가 났어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2025년 11월 13일 오전, 경기 부천제일시장.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남편(문인권·57) 생일상을 위해 시장을 찾은 최서영(56)씨 고막을 때렸다. 계산을 멈추고 야채 가게 밖으로 뛰쳐나간 서영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가판대 조각이 부서져 있었고, 사방으로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위로 팔다리가 뒤틀린 사람들이 피를 쿨럭이며 고통이 담긴 비명을 터뜨렸다.
"영인아 어딨어!" 가게 앞에 서 있던 아들(문영인·당시 23)이 보이지 않았다. 미친 듯이 시장 바닥을 뛰어다녔다. 아들은 가게에서 두 칸 떨어진 정육점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굴은 코피로 흥건했고, 머리 주변으로 핏물에 흥건히 젖은 배추와 대파가 쏟아져 있었다. 손에는 "엄마 무겁다"며 뺏어 든 장바구니 끈이 꼭 쥐어져 있었다.
아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서영씨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일어나지 마! 그대로 있어!" 잠시 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들어왔다. "보호자분, 만지시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나 주세요!" 뻗어가던 손끝을 겨우 거두고, 멍한 시선에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아들을 담았다. 분주한 움직임 사이로 서영씨 모자의 시간만 멈춘 듯했다.
뉴스에서 본 환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중환자실 회진을 마친 조동영(43) 신경외과 교수가 피곤한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속보가 하나 떴다. 부천의 한 전통시장에서 1톤 트럭이 페달 오조작으로 150m가량을 돌진, 2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응급의학과에서 전화가 왔다. "부천에서 환자가 왔습니다. 응급실로 빨리 내려와 주세요."
20대 청년이 누워있었다. 의식은 흐릿했지만 외부 자극에는 반응을 보였다. 출혈만 멈추면 회복이 가능해보였다. 오후 4시 15분, 추적 관찰을 위해 다시 CT를 찍었다. 머리뼈 안쪽으로 흐른 피가 가득했다. 부푼 뇌가 압력을 견뎌낼 수 없어 보였다. 동공 반응도 고정됐다. 사실상 혼수상태였다.
수술실에 불이 켜졌다. 머리뼈를 제거하고 뇌막을 열자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손상된 뇌 조직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3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조 교수가 수술복 차림으로 복도를 걸어 나왔다. 가족들 앞에 선 그는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 교수의 목소리가 병원 복도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장을 좋아하던 아들

아들 영인은 조금 특별했다. 첫돌이 채 지나기도 전, 한쪽 손만 쓰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이상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뇌 미세혈관 손상으로 인한 선천적 지적장애. "돌발행동이 심하면 어떡하지." "일상생활은 과연 가능할까." 막막함이 서영씨 부부를 덮쳤다.
아들은 밝고, 얌전했다. 남의 마음 살피는 세심함은 오히려 또래보다 나아보였다. 사회복지관에서도 '인기 만점'이었다. 중·고교 시절 다녔던 부천시 오정종합사회복지관 최은경(44) 부장은 "착하고 인사성도 밝아 실습 나온 대학생 형, 누나들이 '영인이 덕분에 수월했다'고 입을 모았다"고 떠올렸다.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았다. 바리스타 수업도 들었다. 가끔 일일찻집을 열 때면, 커피 내리는 일보다 손님 응대를 도맡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전통시장을 참 좋아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이 뭐가 좋다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엄마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갔다. 서로 무거운 짐을 들겠다며 옥신각신하고, 장을 다 본 뒤에는 단골 식당에 들러 출출한 배를 채우는 일상. 서영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밖으로 나갈 일이 많지 않아 운동 겸 '공원 갈래? 시장 갈래?' 물으면 늘 시장에 가겠다고 했다"고 웃었다.
선택의 기로...가족이 머리를 맞댔다

이틀 뒤 진료실로 향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기대하던 마음도 잠시, 뇌는 더 상해 있었다. 회복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의료진은 최악의 상황을 전했다. 조 교수는 "다른 생명을 살리고 숭고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장기기증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가족들이 머리를 맞댔다. "어차피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장기기증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갔으면 좋겠어. 영인이라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 같아." 서영씨 말에 남편의 침묵이 길어졌다. 그리고 오랜 고민을 마친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장기가 살아있으면 어딘가에서 아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위안이 될 것도 같았다. 시신 훼손이 걱정돼 망설이던 딸도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동의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김정하(43) 코디네이터가 병실을 찾았다. 두 차례의 뇌사 조사와 뇌파 검사, 뇌사판정위원회 심의 등 낯설고 복잡한 절차들을 하나씩 차분히 설명했다. 가족들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밤새 영양과 산소가 잘 공급되는지, 혈압은 높게 유지되는지 살폈다. 김 코디네이터는 "매일 자정 무렵이면 기증자분을 바라보며 '감사하다'고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고 했다.

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렸다. 병원에서는 오전부터 방송이 울렸다. "오후 3시, 장기기증 예정자의 울림길이 예정돼 있습니다."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직원들이 하나둘 복도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묵념하는 사이 병상은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조 교수가 서영씨 손을 잡았다. "끝까지 살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 교수가 눈물을 훔쳤다. 장기를 받기 위해 도착한 수혜병원 의료진들도 한편에서 가만히 애도를 표했다.
아들 영인은 그날 심장과 폐, 간을 기증하며 세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 서영씨는 꿈을 꿨다. 하얀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제2의 영인을 위해

아들이 떠난 뒤 한 달여.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의 행정·심리 지원을 담당하는 최은정(47)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뵙고 살피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붙잡고 근황을 나눴다.
서영씨는 그 자리에서 장제비·의료비 540만 원을 아들이 다니던 복지관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딸의 아이디어로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고 하셔서 편하신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죠." 기부금은 가족들의 뜻에 따라 복지관 내 활동지원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해가 끝나기 하루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운영하는 유가족·이식 수혜자 서신 교환 프로그램인 '생명나눔 희망우체통'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이식 수술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기대를 접었는데 수혜자 중 한 명이 편지를 남겨줬다.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수혜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소중한 분의 귀중한 선물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이어받아 다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분의 선택은 제 삶 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 뜻이 헛되지 않도록 더 따뜻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서영씨의 시간은 아들을 생각할 때면 멈춰 선다. 사고 이후로는 시장에 간 적이 없다. 아들이 좋아하던 햄버거와 치킨도 더는 먹지 못한다. 길을 걷다 그가 즐겨 듣던 노래만 흘러나와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럼에도 아들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
"이제 대학도 가보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렴.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길 엄마는 바란단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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