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반찬 왔어요” 독거노인 돌보는 집배원들

“우체국입니다. 반찬 배달 왔어요.”
지난 18일 오전 9시 50분, 전남 강진군 군동면의 한 주택 앞. 강진우체국 집배원 김호희(31)씨가 닭볶음탕과 열무김치가 든 가방을 들고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집주인 신명식(100)씨가 나왔다. 신씨는 김씨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서울 사는 증손자가 곧 결혼한다” “간호사 딸이 얼마 전 승진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5분 남짓 이야기를 나눈 김씨는 다음 배달을 위해 길을 나섰다. 대문 앞에 서서 김씨를 배웅한 신씨는 우체국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바라봤다.
김씨는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하지만 다음 배달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오늘 오전 반찬 배달을 해드려야 하는 집만 12곳”이라고 했다. 김씨가 차로 5분을 달려 도착한 강진읍의 다른 주택에는 수년 전 아내와 사별한 박종석(73)씨가 살고 있었다. 치아가 거의 없고 거동도 불편한 박씨를 위해 김씨는 문밖에 있던 소포와 물건을 정리해줬다. 박씨는 그런 김씨에게 “바쁜데 어서 가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이었다.
편지와 소포를 배달해야 할 김씨가 마을 독거 노인들을 살피고 다니는 건 강진우체국이 시작한 ‘우체국 식사 배달 서비스’ 때문이다. 독거 노인 50명에게 매주 목요일 강진 노인복지센터에서 마련한 일주일치 반찬을 배달하는 사업이다. 강진우체국 소속 집배원 27명 중 5명이 자원했다. 나머지 집배원 22명은 반찬 배달을 나간 동료들의 우편 업무를 분담해준다.

사업 첫날인 18일 본지가 집배원들의 반찬 배달길에 동행해 보니, 이들은 배달은 물론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가벼운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한편 말동무 역할까지 했다. 강진선 강진우체국 물류과장은 “반찬을 배달하는 집배원도, 남아서 업무를 나눠 맡은 집배원도 업무량이 많아졌지만 추가 수당은 없다”며 “그럼에도 ‘지역 어르신들이 모두 내 부모님 같다’며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대표적인 ‘소멸 위험 지역’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 인구(20~39세)가 65세 이상 인구 수의 20%에 못 미친다. 강진의 노령화 지수(14세 이하 유소년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 역시 518.9%로, 전국 평균(186.7%)의 세 배를 웃돈다. 사실상 ‘자연 소멸’ 단계에 진입한 지역인 셈이다.
강진군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독거 노인을 위해 식사 배달을 해왔지만 담당자가 두 명밖에 없어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노인들이 사시는 집이 대체로 외진 곳에 있어 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체국 집배원들이 독거 노인 돌봄 사업에 가세하고 나선 것이다.

우체국공익재단은 강진우체국에서 시작한 이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인구 고령화 추세 속에서 강진군 외에도 소멸 위기에 처한 곳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2015년 3곳이었던 소멸 위험 지역은 지난해 62곳까지 늘었다. 우체국공익재단 관계자는 “7월까지 이번 사업에 참여할 우체국을 더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편 배달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인 돌봄 사업은 우체국 입장에서도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 통계를 보면 편지 같은 일반 우편 물량은 2015년 35억3000만 통에서 2024년 20억8000만 통으로 10년 새 41.1% 줄었다. 이런 가운데 우체국은 전국 우편망을 활용한 공공 서비스 확대에 나서고 있다. 2022년 시작한 ‘복지 등기 우편 사업’이 대표적이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보 부족 등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 의심 가구에 집배원이 방문해 생활 실태를 확인하는 사업이다.
전국적인 우편망을 갖춘 우체국을 복지 안전망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는 우체국이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가족에게 안부를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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