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과 싸우는 ‘광주의 딸’… “대국민 가스라이팅에 침묵할 수 없었다”

대전고검 구내식당 야외 탁자에 정유미와 마주앉았다. 지나가던 검사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숨이 좀 쉬어진다며 나보다 더 기뻐한다. 점령군에 지배 당하는 느낌으로 두들겨 맞고만 살았으니(웃음).” 땡볕을 뚫고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정유미는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했을 때 ‘검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고 비판해 검사장에서 평검사로 강등 인사 조치됐다. 사표를 던지는 대신 법무장관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나, 인사명령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편법과 반칙을 뉴노멀로 만드는 대국민 가스라이팅에 침묵할 수 없었다.” 정 검사를 만난 16일, 법무부는 항소했다.
◇ 언제는 계급장 떼고 맞서라더니
-1심 선고 후 ‘당연한 판단’이라고 했다. 승소를 확신했나?
“당연한 판단이지만,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낼지는 확신하지 못 했다.”
-후배 검사들은 왜 ‘숨이 쉬어진다’고 했을까?
“법과 상식 무너뜨리며 계속해서 두들겨 패기만 하니 좌절감과 패배감, 울분이 쌓였던 것 같다.”
-재판부는 법무장관이 원고의 자발적 사직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인사를 악용했다고 봤다.
“대검급 검사(검사장)를 고검급 검사로 보낸 건 누가 봐도 징계인데, 당사자에게 이를 소명할 기회, 방어권을 보장해주지 않은 것이 인사권의 재량 범위를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지휘부 비판 글을 올린 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킬 수 있다고 봤다.
“대장동 항소 포기는 정치권의 파상공세를 견디며, 날밤을 꼴딱 새워 일해온 검사들의 영혼을 팔아먹은 짓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비판했는데, 그게 왜 국민 신뢰를 실추시킨 것인가.”
-‘표현의 자유’ 범위를 벗어났다고 하더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절대 격하거나 심하지 않다. 전문을 공개할 의향도 있다. 그 정도의 표현도 수용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재판부는 또 ‘강등 인사’는 아니라고 했다. 검찰청법상 검사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로 단순화돼 있어 검사장(대검급 검사)을 고검 검사로 발령한 것은 문제 없다는 뜻이다.
“검찰청법 제28조는 대검급 검사의 보직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그 범위에 고검 검사는 없다. 명백한 법령 위반이자 보복성 인사다.”
-전직 검사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검사장을 평검사로 강등시킨 전례가 있다면서, ‘정유미는 변호사 비용 많이 들 것’이라고 했더라.
“그가 검사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 2007년에 있었던 권 모 검사 인사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인사였다. 감찰팀이 권 검사의 청탁 압력 수사 비위를 발견했는데, 징계 시효가 지나 강등 인사로 대신한 것이다. 검찰인사위원회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고 여겨 ‘이 사안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런데 검사 직급이 언제부터 검찰총장과 검사로만 나뉘었나?
“노무현 정부가 평검사들이 용기를 갖고 검찰 수뇌부에 맞서 싸우라는 취지로 ‘평검사-검사장-고등검사장-검찰총장’이던 직급을 ‘검찰총장-검사’로 통폐합했다. ‘계급장 떼줄게, 시원하게 개겨’라는 취지였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 수뇌부에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탄압 받고 있다. 남의 조직을 향해서는 ‘야, 개겨’ 해놓고 자기들한테 개기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이다.”

◇ 尹 사단? 정치적 공격 위한 프레임
-법무부는 당신이 창원지검장 시절 ‘명태균 공천 개입 사건’을 부실 수사했다는 의혹도 인사의 근거로 삼았다.
“부실? 우리 수사팀이 검사, 수사관 다 합해도 20명이 안 되는데, 압수수색해 나온 녹음 파일 2만 개를 분석하고 유력 정치인 포함해 넉 달간 100여명을 조사했다. 매일 밤샘이라 근처 병원에 링거비 선결제 해놓고 1시간씩 눈 붙이고 오게 했을 정도다. 검사 한 명은 사고로 안구가 함몰됐는데도 수술 받고 바로 합류해 한쪽 눈으로 종일 CCTV를 분석했다. 황금폰 찾는다고.”
-‘명태균 사건은 솜사탕처럼 부풀려졌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애초 이 사건은 김영선 캠프의 회계 문제였다. 중요 사건이 아니어서 내가 창원지검장으로 부임했을 때 보고서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게 대형 사건으로 커진 건 강혜경 입에서 윤석열·김건희 이름이 나오면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극성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왔지만 수많은 의혹들 중 형사적으로 처벌 가능한 내용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명태균한테 이런이런 말을 들었다’는 여자의 전언이 여과없이 보도되면서 온 나라가 요동친 것이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 쟁점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이 정원오를 서울시장 후보로 대놓고 픽한 것은 공천 개입인가, 아닌가? 당시 공천위원회 회의록도 다 뒤져봤지만 대통령의 입김, 혹은 관련 발언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격노도 없었다.”
-정유미는 윤석열 사단인가?
“정치적 공격을 위해 갖다 붙인 프레임이다. 중앙지검 공판부장 시절 함께 근무한 적은 있지만 대면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분의 특수부 중심적 사고가 검찰이 망가지는 단초가 됐다고 평가하는 검사도 많다. 친윤으로 꼽힌 한동훈·이원석·송경호 같은 분들은 직언하다 내쳐지지 않았나.”

◇ 옆집 남자에 몽둥이 쥐여주고
-대장동 항소 포기를 비판한 다른 검사장들은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자 사표를 냈다.
“그들은 좌천이어도 검사장 직급으로 발령 났지만, 나는 평검사로 강등됐다. 20년 넘게 검사로 살면서 나는 인사에 불만을 가져본 적 없다. 오히려 인사에 투덜대는 검사들을 안 좋게 봤다. 자기가 가기 싫은 데면 다른 검사도 가기 싫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법령과 인사 원칙을 어겼다.”
-여성이라서 더 탄압받았을까?
“그 정도로 모욕을 주면 사표를 던질 거라 생각했겠지. 나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검사장으로 퇴임하면 3년간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없으니, 평검사 퇴임이 경제적으론 더 유리할텐데.
“그런 계산은 해본 적 없다.”
-검찰청도 폐지되는 마당에, 왜 힘든 싸움을 하나?
“편법과 반칙을 저지르면서 ‘원래 그랬어’라고 가스라이팅 하니까. 우리가 입 닫으면 불법이 합법이 되고 뉴노멀로 굳어지니 나라도 싸워야 했다.”
-검찰 수장들을 강하게 비판하더라.
“대검이 법무부에 박상용 검사를 정직(중징계) 청구한 것은, 내 새끼 패겠다고 오는 옆집 남자에게 몽둥이를 쥐여주고 잘 패는지 지켜보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대전고검을 방문한 구자현 총장대행 면전에서도 쓴소리 했다던데.
“준사법기관의 수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자체가 그 분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뭣보다 조직이 해체를 앞두고 있는데 대검은 어떤 미래도 제시하지 않는다. 파산하는 배에서 물에 뛰어들든지, 페트병 잡고 살아남든지 각자도생 하란 얘기다. 도대체 선장이 왜 있나?”
-노만석 전 총장대행이 보완수사권을 검찰에 남기려고 대장동 항소를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더라.
“육각 결정만 남고 짠맛을 잃은 소금을 소금이라 할 수 있나? 보완수사권을 무슨 꿀단지처럼 얘기들 하는데, 검사에겐 수사지휘권이 중요하지, 건물 다 지어 놓고 문제 있으면 고쳐보라는 식의 보완수사권은 큰 의미 없다.”
-비유를 참 잘한다.
“배움이 짧아 학술적 언어로 우아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웃음).”

◇ 공소 취소도 탄핵 사유
-광주 출신에 서울대 시절 운동권이었다.
“5·18 의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무래도 투심(鬪心)이….”
-그런데 진보 정권과 더 싸우더라.
“애초 보수 정권엔 별 기대가 없었다(웃음). 진보 정권은 내가 생각한 진보가 아니어서 비판했다. 그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집단이다.”
-검찰이 비판 받는 게 억울한가?
“대체 정치 검찰이 뭔가? 정치 이슈에 목소리 내면 정치 검찰인가? 정치인을 수사하면 정치 검찰인가? 이성윤, 박은정 같은 이들이 정치 검사 아닌가? 대부분의 검사들은 자기 캐비닛에 쌓인 사건들 처리하느라 밤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한다. 검찰이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때려잡는 게 능사인가? 삐거덕거리면 기름칠하고 바로잡아서 잘 굴러가게 하면 된다. 검찰 해체는 중요 국가 기관이 70~80년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를 그냥 날려 먹는 것이다.”
-민주당은 왜 아직도 검찰을 악마화할까?
“싸울 대상이 필요하니까, 상대가 강하고 악하다고 여겨질수록 자신들이 정당화되니까. 박상용 검사 징계는, 자신들을 공격하면 모든 수단과 공권력을 활용해 철퇴를 내리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연어 술 파티는 징계 사유에서도 빠졌을 만큼 거짓으로 밝혀졌다. 술 파티로는 안 되니 수사 과정 확인서를 안 썼다는 치졸한 사유를 긁어모아 징계하더라. 별건 수사로 억지 죄목 만들던 옛날 정치검사들 하던 짓을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
-검찰 선배들의 원죄를 원망했겠다.
“원죄를 지은 분들이 지금 정치권에 가서 우리한테 소리지르고 있지 않나?”
-계엄이 탄핵 사유면 공소 취소도 탄핵 사유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 계엄이 내란이 된 건 국회라는 국가 기관을 마비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나. 공소 취소 역시 국가 기관의 여러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정치할 건가?
“전혀. 정치인이라면 징글징글하다.”
-항소심으로 변호사 비용이 또 들겠다.
“내 변호사비는 내가 대는데, 법무부는 내 세금도 포함된 돈으로 변호사를 쓴다. 그것도 대형 로펌의 비싼 전관변호사로. 그게 제일 억울하다(웃음).”
☞정유미
1972년 광주 출생. 대광여고,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 광주지검을 시작으로 중앙지검 공판부장검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창원지검장을 지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가,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다시 대전고검 검사로 강등됐다. 정성호 법무장관을 상대로 낸 인사명령처분 취소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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