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83>]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 초고령사회 일본의 교훈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2026. 6. 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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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령자들이 탁구를 즐기고 있다. /사진 최인한

벌써 20여 년 전이다. 2001~2002년 일본 서부 대학에서 해외 연수를 한 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처음 도쿄에 거주할 때 가장 의아했던 점이 두 가지로 기억난다. 첫째 ‘일본에는 왜 이렇게 노인이 많지’라고 생각했다. 둘째 동네 공원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많은 고령자였다. 일본인은 ‘개’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인가. 당시만 해도 고령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전혀 없던 필자였다.

일본은 2005년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인 고령화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현재 30% 정도다. 초고령사회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정확히 20년을 앞서간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에는 초고령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다양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노후 빈곤’ ‘연금 격차’ ‘슈카츠(終活)’ 에 이어 올해는 ‘로카츠(老活)’가 주목을 받고 있다. 슈카츠는 매사 조심성이 많고, 준비성이 철저한 일본인의 노후 생활 스타일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 있을 때 자기 죽음 이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유산상속, 사후 장례 등을 지칭한다. 이에 비해 로카츠는 노후에도 적극적으로 즐겁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활동에 초점을 둔다.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 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중,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퇴직 후 소소한 일로 행복을 찾는 고령자

초고령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인이 노후를 어떻게 보내는지를 잘 정리한 책이 있다. 사카모토 다카시의 ‘정년 후 진실’은 2023년 발간 이후 1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사카모토는 정년 후 ‘작은 업무’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성취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소개한다. 일본 사회에는 퇴직 후에도 일하는 사람의 작은 업무가 필요하며, 실제로 이런 업무가 일본 경제를 버텨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정년 후 무리하지 않고, 소소한 일을 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는 고령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일본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81.64세, 여성 87.74세다. 60세부터 평균 여명은 남성 24.2세, 여성 29.46세에 달한다. 보통 직장의 정년이 60세라고 할 경우 남성은 퇴직 이후 24년 정도를 더 살게 된다.

요즘 일본에 가면 70대에도 일하는 사람을 흔하게 마주친다. 상당수 노인이 소소한 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몸을 움직이는 덕분에 건강 수명을 늘리는 장점도 있다. 물론 정년 후 고령자가 살아가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기업의 관리직이나 고도의 전문직에 취업한 뒤 평생 업무로 계속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현역 시절 모은 저축으로 여유 있는 여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필사적으로 일해야 하는 사람도 꽤 많다.

일본 임금 소득자의 연평균 수입은 2023년 기준 460만엔(약 4476만원)으로 조사됐다. 60세 이후 취업자의 연평균 수입은 60~64세 445만엔(약 4330만원), 65~69세 354만엔(약 3444만원), 70세 이상은 293만엔(약 2851만원)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세에도 활기 있게 살아가는 세 가지 비결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100세 이상 노인 100명을 조사한 ‘초인열전’은 노후 활동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100세 노인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로 조사됐다. 첫째 장수의 핵심은 건강한 식생활 습관이다. 둘째 ‘초코카츠’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조금씩 자주 몸을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셋째 최고 장수 비법은 ‘츠나가리(사회적 관계)’였다. 의료진의 연구 결과 사회적 관계를 늘리면, 노화와 병을 불러오는 ‘염증 유전자’가 줄어들어 노화 억제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노인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즐기고 있다. 101세 할머니의 경우 지금도 화장품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고객을 만나 상품을 설명하고, 얘기하는 일 자체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101세 할아버지는 지금도 주 6일을 고령자 시설에서 간병(노인 돌봄) 업무를 한다. 또 다른 100세, 105세 할머니는 매일 수영을 하고, 사교댄스 학원에서 댄싱을 즐긴다. 이들 100대 장수 노인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아야

요즘 일본 고령자는 다양한 로카츠를 즐긴다. 대다수 일본 노인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현재 노후 생활을 충실히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 연구자로 유명한 와다 히데키 정신과 의사는 “노후 활동은 리스크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리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 것”이라면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느낌이 들 때 마음과 뇌에 적정한 긴장이 생겨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와다 의사는 지난 4월 펴낸 ‘100세까지 활기 있게 사는 로카츠 요령’에서 나이가 들었다고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미래 대비보다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가 고령자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인이 안전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 생활을 지나치게 억누를 경우 체력이나 감각이 쇠퇴해져 뇌의 전두엽을 사용할 기회가줄어든다. 그는 “평생을 조심조심 살아온 고령자일수록 빨리 활기를 잃는 경우가 많다” 라며 “안전을 위해 노후 생활을 억제하면, 행동 범위가 좁아지고 기력이 떨어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행복한 노후를 위한 로카츠 행동 요령

첫째,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웃는 생활이 중요하다. 고령을 이유로 좋아하던 것을그만두는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식사량, 수면 시간, 웃는 행위는 뇌와 호르몬 분비에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의 사고를 굳게 하는 ‘텔레비전병’에 주의해야 한다.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신문과 책, 인터넷을 통해 정보 습득을 꾸준히 해야 한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뇌의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셋째, 몸을 늙지 않게 하는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건강한 식생활과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종합 의료 진단을 정기적으로 받는 게 좋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 노화를 피할 순 없지만, 영양과 체력 관리를 통해 최대한 노화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고령자는 인공지능(AI) 활용을 못 한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정보통신(IT)은 도구이며, AI는 자기 동료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잘 활용하면 노후에도 활동 폭이 넓어지고 안전한 생활에 유용하다.

다섯째, 고령자에게도 미래가 더 의미 있다.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최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평상심으로 자기 목표와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여섯째, 가장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부든, 친구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까운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핵심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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