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앉은 미국·이란, 서로 경고부터 날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6. 6. 2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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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 본협상 시작... 이스라엘·헤즈볼라 ‘암초’
21일 종전 양해각서(MOU)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스위스 루체른 인근의 호텔에서 만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미국과 이란 협상단이 한자리에서 대면하는 것은 지난 4월 이후 70일 만이다. 양측은 60일간 집중 교섭을 통해 이란 핵물질 처리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된다. /AFP 연합뉴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대표단이 21일(현지 시각)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종전(終戰)을 위한 60일간의 외교 본협상을 시작했다. 지난 18일 정상(頂上)들이 서명한 양해각서(MOU)에서 ‘모든 전선에서의 휴전’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에 합의한 양국은 60일 집중 교섭을 통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한 방안 같은 세부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J D 밴스 부통령은 이날 새벽 스위스에 도착해 먼저 와 있던 스티븐 윗코프 중동 특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등과 합류했다. 밴스는 회담 시작 전 “역사적인 회담에서 이란 핵 문제와 레바논 휴전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기 바란다”며 “모두가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협력하는 미래를 희망한다”고 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도 전날 스위스에 도착했다.

협상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시작 직전까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이란 세력 헤즈볼라를 공습하고, 이란이 이를 문제 삼아 ‘호르무즈 재봉쇄’를 위협하는 등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다뤄야 할 의제도 많기 때문에 회담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회담 개시 시각에 맞춰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레바논 대리 세력(헤즈볼라)을 막지 않으면 다시 아주 거세게 타격할 것”이라고 썼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우리 안보와 직결된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을 앞두고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스위스로 간 것은 상대방 의무 이행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은 1항, 4항, 5항, 10항, 11항에 따른 의무 이행이 시작될 때”라고 했다. 1항은 모든 전선 군사작전의 즉각적·영구적인 종료를 말하며 4항과 5항은 각각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 해제, 60일간 호르무즈 통항료 면제를 가리킨다. 10항과 11항에는 미국의 이란 석유 수출·경제 활동 제재 면제 약속, 이란 동결 자산 즉시 해제 등 내용이 담겨 있다. 바가이는 “동결 자산 문제와 원유 판매 허가권 등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美, 핵문제 중심으로 협상팀 구성… 이란은 제재 풀기 ‘경제팀’ 보내

지난 18일 트럼프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서명한 MOU가 발효됐음에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한때 본협상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레바논 공습을 이어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종전 협상을 흔드는 최대 변수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압박에 지난 19일 헤즈볼라와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은 20일에도 레바논 남부를 공격해 5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등이 전했다.

이에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중단한다는 MOU 1항을 위반했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봉쇄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이다. 이란 당국자는 미 CNN에 레바논 분쟁 종식이 “이란 대표단 의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CNN은 회의 상황을 잘 아는 한 외교관을 인용해 레바논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긴급 회의가 이번 협상 일정에 추가됐으며, 최우선 의제로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은 즉각 반응을 자제하며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 집중했다. 중부사령부는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지 않고 있고, 선박 통행도 계속되고 있다”며 “이란과의 합의가 준수되고 효력이 유지되도록 계속 현지에 주둔하며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헤즈볼라가 “적들의 시도에 주저 없이 대응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상황은 언제든 악화할 수 있다. 알자지라는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쪽 영해는 일부 폐쇄된 상황”이라고 했다.

알자지라는 “이란 대표단이 스위스에 도착한 만큼, 그들은 미국에 자신들의 가장 큰 협상 카드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며 “회담이 결렬될 경우 미국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자국이 원할 때 해협을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 제재를 먼저 풀어달라는 이란과 고농축 우라늄 회수 등 핵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는 미국과 이란의 시각 차이도 확연히 드러난다. 갈리바프가 이끄는 이란 대표단에는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을 비롯, 알리 바게리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 지난 4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협상에 참석한 압돌 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 하미드 보르드 석유부 차관 겸 이란 국영석유공사 사장도 포함됐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이런 구성을 두고 “경제 제재와 동결 자산 해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반면 미국 측은 이번 협상의 주요 목표로 핵 문제의 진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적 개방, 레바논 지역 휴전 유지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보수 진영에서도 이번 MOU를 놓고 ‘이란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비판 여론이 상당해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 금지, 고농축 우라늄 회수·처리 문제 등에 있어 확실한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비핵화 논의를 위해 스위스로 향했다. 그는 “스위스 외무 장관을 만나 이란 관련 상황과 향후 전망, IAEA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 문제가 공식 의제로 다뤄질 것인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양측이 협상 의지는 유지하고 있지만 상호 불신이 상당하고 이스라엘 관련 안보 문제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어 60일 내 최종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전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휴전 기간인 60일 동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통행료가 없을 것이고, 60일이 만료된 뒤에도 통행료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합의가 최종 타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중동 국가들의 ‘수호 천사’로서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부과할 수 있다”며 단서를 달았다.

협상은 미국과 이란이 오전에 파키스탄·카타르 대표단과 따로 회담한 뒤 오후에는 4자 회담 형식으로 진행됐다.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와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이 스위스 현지에서 협상에 참여했다. 종전 합의에 이어 본협상에서도 중재국들이 참여하며 양측 간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일부 맡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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