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대법원과 헌재의 위상 다툼

정제혁 기자 2026. 6. 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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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와 서초구 대법원·대검찰청. 한수빈·문재원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심판 등을 관장한다고 규정한다. 1987년 제9차 개헌 때 이 조항이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기구가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다. 헌법이 기본권에 충실하지 못했을뿐더러, 그것조차 왜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는 건 꿈꾸기 힘든 독재 시절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었다. 그러다 헌재가 설치되면서 두 기관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헌법이 실질적 최고규범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헌재의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등은 파장이 컸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윤석열 파면 결정은 헌재 위상을 공고히 했다. 반면 사법농단,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 대선개입 의혹 등을 거치는 동안 대법원의 권위는 실추됐다.

두 기관의 위상 다툼을 보여주는 사례가 한정위헌결정이다. 헌재는 법원의 법률 해석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한정위헌결정을 종종 내렸다. 그때마다 대법원은 법률 해석·적용은 법원 고유 권한이라며 효력을 부정했다.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재판을 두고도 헌법소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이 여당 주도로 제정돼 지난 3월 시행됐기 때문이다. 헌재가 대법원보다 우위에 있는 듯한 외양이 만들어졌다.

통일TV 대표 진천규씨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사건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가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 요청서’를 보냈다. 진씨는 1심에서 징역 300만원을 선고받자 해당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재는 4년째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항소심 재판도 멈춘 상태다.

법원은 헌재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는지 최초로 심사하겠다고 했다. 헌법 제107조2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는데, 헌재의 재판 지연도 ‘부작위 처분’에 해당해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판소원법에 대한 법원의 맞대응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본권을 내세워 상호 견제하는 모양새이니 좋다고 봐야 할까. 두 기관 간 위상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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