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칼럼] 자카르타에서 한국을 본다
'안 보이던 가장 큰 나라'
인도네시아서 다시 묻는다
왜 어떤 나라는 잘살고
어떤 나라는 못사는가?

자카르타 공항 입국심사대에 '팁 금지'라고 쓰여 있다.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팁을 받는 관행이 있었다는 말이겠다. 미리 비자를 받은 이는 여권 스캔만으로 통과할 수 있게 돼서 이제 그런 문제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1997년 초에 와보고는 29년 만에 다시 찾은 나라다. 그새 한 세대가 지났다. 30여 년을 버티던 권위주의 정권은 아시아 경제 위기 때 무너졌다. 변화는 통화에 응축돼 있다. 서랍 속에 잠자던 1만루피아 지폐의 구매력은 87% 하락했다. 새 돈이 나오면서 아예 쓸 수도 없게 됐다. 다만 금융위기 직전에 발행된 희소한 구권이라 수집가들이 찾는다. 빳빳한 상태라면 액면의 3배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자카르타에서는 한국이 더 잘 보인다. 우리도 인도네시아와 같은 시기에 환란을 겪었다. 그동안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43%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보유국을 이 나라와 견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몇 가지 숫자를 짚어보자. 한국의 경제 규모는 그새 3배(달러 기준) 남짓 커졌다. 인도네시아는 9배 가까이 커졌다. 위기 전 이 나라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보다 11계단 아래였다. 지금은 2계단 아래까지 쫓아왔다. 구매력(PPP) 기준 GDP로 따지면 이미 한국을 제쳤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7위, 한국은 14위다.
1인당 소득으로 보면 우리가 여전히 7배나 잘산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 세기 중반에 세계 4대 경제국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길게 보면 우리에게 연 2% 성장은 버겁다. 8% 성장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가 5% 성장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늦어도 10년 안에 명목 GDP에서도 우리를 제칠 것이다. 두 나라를 견줘보면 차이는 극명해진다. 지난번에 왔을 때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명 남짓했다. 지금은 3억명을 바라본다. 중위연령이 갓 30을 넘긴 젊은 나라다. 40대 후반의 우리보다 훨씬 역동적일 수 있다. 1억명을 훨씬 넘는 중산층의 수요 기반은 수출에 목을 매는 우리보다 안정적일 것이다.
1997년 초 이 나라는 기아자동차의 기술을 빌려 국민차를 만들려고 했다. 지금은 전기차 가치사슬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 한다.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의 42%가 이 나라에 몰려 있다. 국가전략은 핵심 광물을 지렛대로 제련소부터 배터리 공장까지 외국 기업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제조 기반이 약한 이 나라는 중국 기업들의 쉬운 먹잇감이다. 전기차 판매의 90%를 중국 브랜드가 차지한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기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자본의 파상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21세기 중반 세계 4위 경제국은 점점 더 1위 경제국의 인력을 느낄 것이다.
한 기업인의 말마따나 인도네시아는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나라'였다. 하지만 이제 보이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 나라는 불의 고리에 있다. 지진과 쓰나미가 덮치는 환태평양 조산대다. 격변은 정치와 경제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한국은 두 세대에 걸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이 나라는 그보다 더 짧은 압축 발전을 거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숙하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가 손안의 슈퍼컴퓨터를 가진 지금은 권위주의로 버티기 어렵다.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은 한국은 이제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인도네시아를 보면 우리의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다. 앞날도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자카르타는 '현타'를 느끼기 좋은 곳이다. 이 젊고 부산한 도시에서 또 묻는다. 왜 어떤 나라는 잘살고 어떤 나라는 못사는가.
[장경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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