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發 수백조 유동성… 집값 불쏘시개 되게 놔둘 건가

반도체 호황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흔들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성과급과 무주택 사원에 지원하는 저금리 사내 대출을 합친 부동산 대기 자금은 최대 53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성과급을 통해 풀릴 수 있는 자금은 약 23조원, 사내 대출을 통한 자금은 약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사내대출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여기에 양사 직원들이 보유한 기존 자사주, 그리고 양사가 거두고 있는 순익까지 감안하면 향후 시중에 유입될 유동성 규모는 수백조원대로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업장과 인접한 이른바 ‘반도체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의 한 신축 아파트는 최근 전용 84㎡ 가격이 22억원대를 돌파했다. 수지·분당·기흥·영통 등 반도체 벨트 주변 지역도 가파른 상승세다. 실수요뿐 아니라 반도체 직원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은 공급 부족 우려가 심각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유동성이 특정 지역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된다면 집값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 대응이다. 지난 20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반도체 호황으로 창출된 부가 부동산으로 흘러갈 수 있다”면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조정 필요성을 밝혔다. 그러나 공급 부족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도체 산업의 결실이 생산과 투자, 혁신이 아닌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쓰인다면 국가 경제 전체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반도체로 번 돈이 집값만 띄우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반도체발 유동성이 또다른 집값 광풍의 불쏘시개가 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으로 생겨난 막대한 유동성이 투기 수요로 흘러들지 않도록 하는 종합적 대책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주택 공급을 조속히 확대하고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여 시장의 공급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내대출이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로 악용되지 않는지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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