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기⑥]이재명-트럼프의 은밀한 대화, 결국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하는 정상 외교

권순우 기자 2026. 6. 21. 16:5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럽·G7 순방 성과 브리핑 / 출처. 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은 8박 10일 유럽 순방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19일 직접 기자들 앞에 섰다. 순방 성과를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기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대통령의 발표는 참모들의 브리핑과 달랐다. 대통령만 직접 경험한 일도 있고, 정상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대통령만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안도 있었다. 정상회담은 여러 사람이 함께 가지만 대통령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다. 순방 중에 듣지 못했던 여러 사안들을 이 대통령은 명료하게 설명했다.

① 한미 정상의 만남

청와대 관계자 :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구체적인 진전이 있다고 보고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조율된 게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청와대 참모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G7은 짧은 일정이다. 참모들은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G7 중에 우리와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군사 동맹이기도 하고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정상을 만났다고 해서 대단히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을 만났느냐 아니냐,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우리 국민들이 관심이 많은 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관계자는 가능하면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주안점을 두어 추진하는 주제는 아니라고 했고, ‘이번에 있으리라 없으리라 그렇게 보지는 않고 열어두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행여라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생길 부담을 덜기 위해 기대를 낮추려 했을 게다.

공식적인 양자 회담은 성립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제대로 성사시켜 준 사람은 주최국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공식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나란히 앉아 약 90여 분간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순방 중에 그 소식을 접했는데, 우연인지 배려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Image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일부러 만찬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과 저 이렇게 자리를 붙여 주셨다고 저한테 말씀하셨다. 얘기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아서 일부러 그랬다고 저한테 생색도 내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우리는 만나고 싶어도 미국이 원하지 않으면 양자 회담을 할 수는 없다. 만찬장 옆자리는 피할 수 없다. 정상들끼리만 할 수 있는 배려다.

G7은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들의 은밀한 모임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G7 정상회의를 하면 주변에서는 시위대가 몰려와 ‘그들만의 리그’를 비판한다. 최근 G7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이 제시하는 의제마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당일 밤에 귀국을 해서 망친 적이 있다. 올해도 14일부터 G7 정상회의를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80세 생일에 UFC 격투기 대회를 봐야 한다고 해서 15일로 날짜를 미뤘다.

유럽은 관세를 매긴 미국을 비난하고, 미국은 유럽을 국방비 무임승차자라고 비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아내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조롱한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할 수도 있고, 가장 불편할 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 옆자리에 이재명 대통령 자리를 배정한 건 배려이자 불편한 미국을 상대하는데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② 한미 정상의 대화

청와대 관계자 “한반도에서도 지속 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과 관여를 기대한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진전을 위해 자신으로서도 필요한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 답변만 보면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알았다고 답한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건지, 트럼프 대통령은 뭘 알았다고 했다는 건지.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문제인데 현장 동행 취재를 해도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한 문제도 있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해결한 것처럼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주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중동 전쟁을 해결한 것처럼? 미국은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했는데?

이 부분도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에서 명료하게 설명했다. “문제가 있는 데 관여해서 완화하고 해결한다는 뜻에서 한반도 문제가 동일하지만 중동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그런 방식으로 하면 안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은 이렇다. 각국 정상들이 공동 사진 촬영을 위해 모였을 때 처음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만났다. 북한 문제가 골치 아픈 이유는 이미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에 조치를 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고민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답답해했다고 언급하며, 솔루션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북한은 이미 연간 10~20개 핵무기를 만들 수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거의 마지막 개발 단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를 이야기해서는 간극을 좁힐 수 없다. 그러다 체제 안정을 위한 핵무기 보유 이상 생산하게 되면 해외로 수출을 한다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해 미국을 직접 위협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 그래서 일단 추가적인 핵물질 개발을 하지 않도록 하고 핵물질 해외 반출, ICBM 개발 중단 등을 첫 번째 목표로 하자는 제안이다.

현재 북한은 상대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때는 극단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다. 북한이 가난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경제 상황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상 여건이 양호해 곡물 생산량이 전에 없이 좋다. 최악의 식량 위기는 모면한 상태다.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지원한 대가로 상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코로나19로 막혔던 중국과의 국경이 완전히 열렸다. 전쟁으로 완전히 비어 버린 러시아 노동자의 자리에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돼 꽤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북한이 큰 소리 뻥뻥 치는데는 이유가 있다.

당장 배가 고파서 미국에 손을 벌릴 일도 없고, 나가 봐야 이미 완성된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할 것이 뻔하니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시간이 흘러 핵무기 보유량이 더 많아지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완료되면 협상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시간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 핵을 인정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파격적인 해법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가장 위험해지는 나라는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이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면 가장 정치적으로 곤란해지는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며 먼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솔루션을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건 중요한 내용은 아닌데, 한국 사람들이 참 답답해했던 게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이야기를 하면 4만 5000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바로 아니라고 하면 화날 수도 있지 않나. 4만 5000명이 맞는데 지금은 2만 8500명이라고 확인시켜 드렸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 누구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주한미군은 4만 5000명이 아니라 2만 8500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상끼리의 만남에서만 가능한 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주한민국이 4만 5000명이라고 할까?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 면담 / 출처. 바티칸 미디어

③ 레오 14세와의 북한 방문 논의

청와대 관계자 “여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들이 논의된 걸로 들었습니다. 방북안들도 거론이 되었을 걸로 생각합니다.”

레오 14세 교황과의 만남에서 북한 방문을 요청했는지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청와대 참모들은 교황 방북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교황이 북한에 가려면 북한이 초청을 해줘야 한다. 초대할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바티칸과 한국이 북한 방문 이야기를 하는 게 북한 입장에선 좋아 보일 리 없다. 북한이 초청 안 하겠다고 성명이라도 내면 교황과 이 대통령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이런저런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다 보니 교황과 이 대통령의 면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당사자인 이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면.

이 대통령은 교황과 나눈 대화를 기자회견을 통해 투명하게 발표했다. 내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서울 청년대회 계기로 한국 방문을 요청했고 한국에 오면 DMZ 방문을 포함해 가급적이면 북한 방문도 추진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내년에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100만 명 이상 참여하는 ‘세계청년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잼버리 참석자가 4만여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행사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런 큰 규모의 국제 행사를 치르려면 개최국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톨릭 행사를 지원할 테니, 교황께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또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소식도 하나 있다. 이탈리아에서 취재를 하던 중 올해 가을쯤 좋은 소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좋은 소식이란 다섯 번째 한국인 추기경 탄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사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장담할 수 없지만, 한국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뉴스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은 4명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됐고, 37년 만에 정진석 추기경이 탄생했다. 2014년 염수정 추기경이 임명됐고 가장 최근에는 2022년 유흥식 추기경이 임명됐다. 선종한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을 제외하면 2명인데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내려왔고 유흥식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에 임명됐다. 한국 천주교에는 추기경이 없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같은 사정을 교황께 전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교구에 현직 추기경이 한 분도 없다. 현직 추기경을 임명해 달라는 한국 가톨릭계의 염원도 전달드렸다”고 말했다. 교황께서 삼성 갤럭시 시계를 차고, 현대차를 탄다는 소식도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코로나19 때부터 5년 만에 외벽 청소를 마친 이탈리아 대법원 / 직접 촬영

④ 느린 이탈리아를 빠르게 만든 정상 외교

이탈리아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느리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대법원 건물 외벽 청소를 코로나19 때 시작했는데 최근에 마쳤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한두 달이면 끝났을 일이다. 건설, 청소, 행정까지 모두가 느리다.

모든 게 느린 이탈리아를 정상외교는 빠르게 만들었다. 지난 1월 멜로니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자국 내 설비투자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데 한국 기업이 배제된 상황에 대해 배려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에 이탈리아를 방문해 보니 한국 기업에도 똑같은 혜택을 주도록 제도가 바뀌어 있었다. 이제 이렇게 뚝딱 하면 되는 일이었나?

이재명 대통령은 “하원 의장과 면담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원래 이탈리아는 이렇게 일하지 않는다고, 정말 특별한 예외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도 때로는 정상 간 대화 한 번에 순식간에 해결되기도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상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있고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순방 동행 취재를 하며 궁금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기자 회견을 함으로써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