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면무도회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겨레 2026. 6. 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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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중세의 무거운 갑옷 같은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 순간, 피로에 찌든 못생긴 남자가 나를 쳐다본다. “누구세요? 집 잘못 찾아오셨는데요.” 내가 이렇게 못생겼을 리가 없다. 단지 조금 지쳐 있을 뿐이다.​

취미로 열대어를 키운다. 수족관의 이끼를 잘 먹는다고 해서 조그만 새우들도 함께 키우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이 새우들이 단단했던 껍질을 벗고 투명한 허물만 남아 있는 걸 본다. 처음에는 죽은 줄 알고 놀랐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수초 어딘가에 숨어있다. 막 허물을 벗어서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그마한 새우는 우울하고 약한 모습이 아니라, 다시 한번 성장할 각오로 나를 보호해 주는 갑옷 같은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아이 같은 모습으로 새로운 세상과 부딪칠 각오를 한 것이다. 맨날 익숙하고 낡은 갑옷, 가면만 쓰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길지 않나?

거울 앞에 못생긴 놈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는 건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새로운 가면, 페르소나로 다시 새로운 세상에 부딪히기 위한 결연한 각오이다.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새우가 껍질을 벗듯 가장 약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지금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 보고 있다. 다양한 가면을 써보는 중이다. 영화에도 도전했다. 요즘 ‘니가 좋아’라는 곡으로 온 국민을 소위 ‘킹’ 받게 하는 배우 오정세가 나온 영화 ‘와일드씽’에 잠깐이지만 나도 깜짝 출연을 한 것이다. 정세와는 20년 가까이 된 동갑내기 친구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정세는 사석에서 참 조용한 편이다. 그렇다고 마냥 조용하다기보다는 조곤조곤 사람을 웃기는 스타일이다. 그런 사람이 배우라는 가면을 통해 수많은 인물을 살아내고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한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어렸을 적에는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정확히는 수줍음과 나댐이 공존하는 인간이었다. 지금이야 음악을 할 때는 기세 좋게 수만명 앞에서도 공연을 하고 끼를 마음껏 발산하지만, 아직도 카메라 앞이나 강단에 설 때는 긴장이 된다. 예전에는 섭외를 받아도 사람들 앞에서 긴장된 모습 보여주기 싫고, 스트레스받는 것도 싫어서 다 거절했는데, 왠지 나중에 후회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한번 부딪쳐 보자.

그래서 최근엔 페스티벌 엠시, 강연, 작사, 유튜브 콘텐츠 진행자, 단편영화 배우로도 참여하기로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칼럼도 벌써 4년 차가 넘었다. 다양한 가면을 써보고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기로 했다. 어떤 가면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일단 한번 써보고 결정하고 싶다. 복지에 관해 수다 떠는 유튜브 콘텐츠 ‘복톡방’의 첫 진행을 맡을 때는 정말 긴장이 돼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약간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었다. 제일 높은 곳에서 철컹하고 잠시 멈췄을 때의 긴장감. 내가 뭐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을 때,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또 언제 이런 긴장감을 느껴보겠어. 그냥 번지점프 하러 왔다고 생각하자. 놀이기구 무섭다고 죽어본 적 없잖아. 그냥 임사체험 놀이 왔다고 생각하자.’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덕분에 잘 몰랐던 복지의 영역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가면을 써본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때론 먹고살기 위해 자본주의의 미소라는 가면을 썼다 해도 괜찮다. 그 또한 내가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표정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리고 다양한 가면을 써볼수록 세상은 넓어지고 몰랐던 감정들이 찾아온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가면들의 표정을 닮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가면을 쓸지 잘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 음악이나 잘하지 왜 자꾸 쓸데없는 걸 하냐고 물어본다면, “설레어 봤어? 난 설레어 봤어”라고 말하고 싶다. 이거면 나름 성공한 거다. 아니, 꼭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수많은 경험은 나의 감각 어딘가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오기 마련이다.​

언젠가 가면무도회가 끝날 때, 그때쯤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결국 내가 지어온 표정들 전부 다가 나이지 않았을까? 스스로 인생이라는 가면무도회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오늘 하루도 겨우 버텨내고 너덜너덜 지친 모습으로 집에 들어왔을 때, 거울 속에서 못생긴 사람이 멀뚱멀뚱 쳐다보면 이미 잘하고 있다고, 지금 있는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양손으로 그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해보자. “니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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