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탐구생활] 국내 첫 RE 100 달성 수자원공사⋯ 한국 ‘에너지전환’ 날개 달다
글로벌 운영기관에게 RE100 ‘국내 첫 공식 인증’
녹록치 않은 국내 여건, 에너지 전환에 ‘단비’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 세계 경제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수자원공사가 최근 국내 최초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 달성을 선언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이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에너지 전환의 선도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수자원공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업들의 RE100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위해 적극적 PPA(전력구매계약)에 나서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수자원공사 RE100의 주요 원천⋯다목적 대청댐에 가다
지난 18일 찾은 대전 대청댐. 초여름 햇살 아래 댐 뒤편으로 거대한 수면이 호수처럼 펼쳐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물길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높이 72m, 길이 495m의 대청댐은 충청권 450만 명의 식수를 책임지는 다목적 국가 핵심 수자원 시설이다. 이날 현장에서 확인한 대청댐의 역할은 물 공급에만 머물지 않았다. 동시에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대청댐발전소로 가기 위해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댐 내부 점검 통로인 ‘갤러리’를 지나야 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을 따라 들어간 현장은 수십 년 동안 국가 수자원을 관리해온 시설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이어진 긴 통로에는 내부 온도와 구조물 상태를 확인하는 각종 계측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댐의 안전을 위해 이들 장비는 실시간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의 기운을 머금은 갤러리 내부는 뙤약볕인 외부와 달리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수백 미터 길이의 통로를 지나자 청주 관내에 위치한 대청댐 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전소 내부에서는 4만5000KW급 수력발전기 2기가 운영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거대한 설비가 내는 진동과 기계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자원공사는 현재 총 1.5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74%인 1.1GW가 수력발전이다. 대청댐은 전체 설비용량의 약 6%를 차지하는 핵심 거점 가운데 하나다. 수자원공사의 재생에너지 생산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RE100 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지난달 글로벌 RE100 운영기관으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았다. 2024년 실적 제출과 2025년 검증 절차를 거쳐 최종 승인을 획득했으며, 국내 RE100 참여 기업 가운데 공식적으로 목표 달성을 인정받은 첫 사례다.
RE100 어려운 한국 풍토⋯수자원공사, 국내 최초 선언
국내에서 RE100 확산이 더딘 가운데 수자원공사의 RE100 달성은 구조적으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 산업계 전반이 재생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먼저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성한 셈이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가 RE100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은 비교적 명확하다. 연간 전력 사용량이 약 1.7TWh 수준인 반면, 수력과 조력, 태양광 등 자체 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이를 상회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수자원공사는 RE100 선언 시점을 서두르지 않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사실상 RE100 개념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부터 이미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이었지만, 국제 기준 변화와 제도 정비 과정을 지켜보며 속도 조절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해 주요 기업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체계가 갖춰지면서 RE100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여건이 성숙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산업계 전반의 현실은 이와 대조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과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탄소 감축 요구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더 이상 재생에너지 전환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국내 여건은 녹록지 않다. 2024년 RE100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424개 회원사의 평균 이행률은 53%로 집계됐다. 유럽이 83%로 가장 높았고 미국 67%, 중국 59%, 일본 36% 순이었다. 반면 한국은 12%에 그치며 주요 국가들과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전력 소비 규모를 고려하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의 RE100 참여 기업 전력 사용량은 68TWh로 미국(108TWh), 중국(77TWh)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재생에너지 조달 기반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이행률은 현저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RE100 운영기관인 클라이밋그룹은 한국을 ‘RE100 달성이 어려운 시장’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PPA 적극 확대⋯공익 도모 나선다
국내 RE100 확산이 더딘 배경으로 산업계는 제한적인 재생에너지 조달 환경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기업들이 핵심 이행 수단으로 선호하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 활용이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은 전력 수요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장기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점이 뚜렷하다. 장기간 고정가격으로 전력을 조달할 수 있어 전력시장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RE100 이행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직접PPA는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RE100 이행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활용 비중은 0.3%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조달량의 약 27%를 직접PPA를 통해 확보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이같이 국내 시장의 제약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자원공사는 공공기관으로서 직접PPA 확대에 적극 나서며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롯데케미칼, 우리은행 등 주요 기업과 총 296MW 규모의 직접PPA 계약을 체결하며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의 RE100 이행을 지원하는 동시에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기반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수자원공사의 RE100 달성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자체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이 부족한 국내 산업 구조 속에서 공공이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자원공사는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직접PPA 거래량의 약 49%를 공급하며 사실상 시장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공급 사업자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최소 10MW 이상 추가 PPA 입찰 추진 등 선도적 역할 수행
자연이 빚어내는 수자원은 오랜 세월 동안 본질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 않았지만, 그 물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달라지고 있다. 식수와 산업용수를 공급하는 국가 기반시설을 넘어 이제는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재생에너지 생산 거점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RE100을 달성한 수자원공사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 확대와 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RE100 확산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올해 육상태양광과 소수력발전 등을 활용해 최소 10MW 이상의 추가 직접PPA 입찰을 추진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상태양광과 수열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총 10GW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원을 확보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는 단순한 발전 설비 확충을 넘어 국내 기업들의 RE100 이행 기반을 넓히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만큼,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발맞춰 공공기관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민간기업의 RE100 달성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청댐=곽진성 기자 pe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