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도 폐교 찾은 밀화부리, ‘새들의 천국’에서 계속 만나려면

한겨레 2026. 6. 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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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여름철새의 불편한 정거장 된 어청도
밀화부리 수컷. 굵고 강한 노란 부리가 이 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 5월9일 전북 군산시 어청도에서 정겨운 밀화부리를 오랜만에 만났다. 2021년 폐교해 이제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어청초등학교 운동장에서였다.

밀화부리는 1970년대만 해도 산과 들, 마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마을 정원이나 과수원 주변에서도 종종 관찰됐지만, 요즘엔 보기 어려워졌다. 도시 개발과 하천 정비로 서식지 훼손됐고, 늘어난 건물 유리창에 새들이 충돌해 죽는 사고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밀화부리 암컷은 얼굴의 검은 깃털이 없으며, 이를 통해 수컷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텃새로 알려져 있으나, 일부 개체는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는 부분적 이동성을 보인다. 중부 이남에서는 사계절 관찰되지만, 북부 지역 번식 개체들은 겨울이면 남쪽으로 이동한다. 겨울철에는 작은 무리를 이뤄 먹이를 찾는 모습도 자주 관찰된다.

노랗게 윤이 나는 부리가 꿀벌이 집을 짓기 위해 분비한 노란 밀랍을 닮았다고 해, 밀화부리란 이름이 붙여졌다. 두툼한 원뿔형 부리는 작은 새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힘이 느껴진다. 몸길이는 20㎝ 안팎이지만, 큰 머리와 굵은 부리 덕분에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밀화부리. 노란 부리가 인상적이다.
꼬까참새(오른쪽 뒤)가 밀화부리 무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꼬까참새는 멧새과에 속하는 겨울철새로, 주로 들판과 농경지, 관목지대에서 생활한다.
훤히 드러난 운동장 잔디에 내려앉은 밀화부리는 먹이를 찾으면서도 천적인 맹금류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밀화부리는 주로 땅 위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떨어진 열매를 부지런히 찾으면서도 사방을 살피며 맹금류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먹이를 찾기 전에는 주변을 살피면서 상황을 확인하는 신중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호기심 어린 행동에서 신중한 습성이 드러난다.

밀화부리 수컷은 번식기에 영역을 알리거나 짝을 유인하기 위해 크고 다양한 소리를 낸다. 반면, 암컷은 짝과의 교신이나 경계 신호 목적의 짧고 단순한 울음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암컷을 미끼로 수컷을 유인해 새장에 넣어 기르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에는 들깨를 주요 먹이로 사용하곤 했다.

밀화부리는 떨어진 열매를 찾기 위해 주로 땅 위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주변을 경계하는 밀화부리 암컷. 땅 위에서 먹이를 찾는 동안 밀화부리는 사방을 살피며 경계심을 높인다.
밀화부리 암컷이 특유의 굵은 노란 부리로 열매를 살피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강력한 부리로 열매를 부셔 먹는 밀화부리 수컷.

밀화부리는 러시아와 몽골, 아무르강 유역, 중국 북동부와 한반도 등지에서 번식하며 겨울에는 중국 남부와 일본 혼슈 이남으로 이동해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봄·가을 이동 시기에 무리를 지어 통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리를 이루지만, 먹이를 찾을 때도 서로 큰 다툼 없이 비교적 온순한 행동을 보인다.

몸 전체는 차분한 회색빛을 띠고, 등과 날개는 그보다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검은 날개 끝에는 흰 점무늬가 박혀 있어 날아오를 때 은은한 대비를 만든다. 꼬리는 검고 다리는 옅은 살구색이며, 갈색 눈빛에서는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 온순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머리 부분의 검은빛이 더욱 또렷해져 한층 선명한 분위기를 풍긴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회색 기운이 감돌아 한결 온화한 느낌을 준다.

나무에 앉아 여유로운 휴식을 하는 밀화부리 수컷.
밀화부리는 때로 새순과 잎를 먹기도 한다.

밀화부리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에 컵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암컷은 갈색 반점이 찍힌 엷은 푸른빛의 알을 보통 4개 정도 낳고, 12~13일 동안 거의 둥지를 떠나지 않은 채 알을 품는다. 그동안 수컷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며 둥지 주변을 지킨다.

새끼가 부화하면 암수는 쉴 틈 없이 먹이를 공급한다. 어린 새들은 2주 남짓 지나 둥지를 떠나지만, 곧바로 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한동안 부모 곁을 따라다니며 들풀 사이에서 먹이를 찾는 법과 위험을 피하는 법을 배운다. 번식기가 지나면 밀화부리들은 작은 무리를 이뤄 들녘과 산기슭을 떠돈다.

떨어진 낱알과 풀씨를 주워 먹고, 잘 익은 열매를 굵은 부리로 단숨에 깨뜨리는 모습은 작은 산새라고는 믿기 어려운 힘이 느껴진다. 나무와 땅을 오가며 먹이를 찾는데 특히 늦가을 햇살 아래 조용히 무리를 지어 수숫대에 무리를 지어 앉아 열매를 먹는 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농촌 풍경처럼 정겹고 평온하다.

밀화부리는 먹이를 찾기 전 호기심 어린 행동을 자주 보인다.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확인하는 신중한 습성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암컷 밀화부리도 호기심 어린 행동을 한다.

이처럼 보기 힘든 밀화부리를 만날 수 있는 어청도지만, 올바른 탐조 문화와 관찰 예절은 부족하다. 어청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새 이동 경로의 중요한 거점이다. 봄·가을이면 희귀 철새를 관찰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국외 탐조인들까지 이 섬을 찾는다.

작은 섬이지만 동아시아 철새 이동 경로에서 차지하는 생태적 가치는 절대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아쉽다. 철새 보호정책과 서식지 관리, 탐조 환경개선은 여전히 부족하다. 세계적인 탐조 명소라는 이름과 달리 현장에는 체계적인 보호 대책과 지속적인 관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어청도를 찾을 때면 새로운 종을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해마다 줄어드는 새들의 개체 수를 떠올리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기후변화와 서식 환경 변화 영향도 크겠지만, 3년 전부터 섬에 나타난 고양이들로 인해 먼 길을 날아온 철새들이 희생되는 모습도 적지 않다.

어청도 길고양이는 새들의 천적이 되었다.
지난 5월 9일 발생한 쓰레기장 화제 현장.

올해는 몇해 동안 방치된 쓰레기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자칫 대형 산불로 이어질 뻔한 사고까지 벌어졌다. 불길은 하루가 지나서야 진화됐다. 작은 섬의 생태 환경과 주민 안전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섬에 오랜 기간 쓰레기가 방치됐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깝다.

어청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수많은 철새가 쉬어가는 생명의 공간이며, 우리나라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자연유산이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홍보보다 실질적인 보전 정책이 필요하다. 철새 쉼터 보호를 비롯해 쓰레기 처리 체계 개선, 산불 예방 관리, 탐조기반시설 정비 등 구체적인 대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어청도가 철새들의 소중한 쉼터로 남아 해마다 많은 새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수식어는 이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을 지키고 생태를 보전하려는 꾸준한 실천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군산시가 어청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미래 세대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지켜가는 행정적 책임과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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