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의 정곡(正鵠)] 납작 엎드린 이성계, 90도 폴더인사 정청래
李대통령 ‘책임 윤리’로 낮추고, 정 대표는 ‘신념 윤리’ 앞세워
배신 프레임 피하려 칼 감춘 당권… ‘1인 1표제’ 쥐고 루비콘강 건널채비

지난 18일 성남 서울공항 귀국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꺾는 ‘폴더인사’를 했다. 여당 대표가 최고 권력자에게 고개를 숙인 이 장면은 1388년 역사 속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가 개경에 입성해 대궐로 나아가 우왕(禑王) 앞에 엎드린 일화다.
『태조실록』총서에 따르면 사실상 체제를 전복한 이성계는 최영을 제압하며 “이러한 사변은 나의 본심이 아니며 부득이하게 된 것(非吾本心, 不得已耳)”이라며 정변의 명분을 ‘충정’으로 덮었다. 실권을 쥐었으나 임금의 명을 거역한 ‘역적’의 오명은 피해야 했기에 택한 행동이다. 역사는 이 이질적인 장면을 단순한 굴복이나 기만으로 읽지 않는다. 실권은 쥐었으되, 기존 권위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불필요한 마찰 비용을 줄이기 위한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행위로 본다. 이성계는 왕에게 엎드려 예를 갖추었지만, 손에 쥔 병권(兵權)은 단 한 줌도 내려놓지 않았다. 권력의 세계에서 굽힌 허리의 각도와 실질적 무력의 지향점은 이처럼 철저히 분리되어 작동한다.
최근 당·청 핵심부에서 관찰되는 언어와 태도의 불일치는 이같은 권력의 문법을 환기한다. 귀국장에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겉으로는 갈등의 봉합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권력의 지분을 둔 긴장감을 품고 있다.
19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철저히 자신을 낮췄다. 지지율 하락을 두고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며 민심 이반을 온전히 국정 최고 책임자의 몫으로 껴안았다. 당을 향해서는 선명성 경쟁을 멈추고 포용을 주문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설파한 국가 전체의 결과를 감당하고 타협을 끌어내야 하는 지도자의 ‘책임 윤리’를 집권 세력의 새 좌표로 세운 것이다.
반면 같은 날 정 대표의 언어는 이 대통령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데 집중됐다. 정 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을 “월드클래스 정치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국정운영 방법론에서 두 사람의 말머리는 정확히 어긋났다. 보완수사권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은 “악용될 여지가 없는 예외적 경우까지 봉쇄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입법의 유연성을 당부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전면 폐지는 너무나 당연하다”며 당론 강행에 쐐기를 박았다. 지도자는 국정의 책임을 안고 타협의 공간을 열었는데, 당 대표는 그 공간을 닫아버린 것이다.
극단적 칭송과 노선 이탈이 공존하는 이 간극은 귀국장의 폴더인사가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 대통령은 정권 초반 국정 장악력을 쥔 강력한 지도자다. 이 압도적 구심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곧 ‘항명’이나 ‘명청대전’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구조적 긴장 속에서 정 대표가 택한 칭송은 맹종이 아니다. 상징적 권위와 실질적 당권을 철저히 분리하여 자신의 독자 노선을 방어하는 비대칭적 권력 기술이다. 강한 지도자를 무결점의 성역으로 띄워 올림으로써 자신을 향할 수 있는 ‘권력 누수’나 ‘내부 총질’의 비판을 사전에 차단한다. 이 대통령에 대한 정 대표의 ‘충성 증명’은 우왕 앞에 엎드린 이성계처럼 역적 프레임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방패인 셈이다.
극진한 의전의 장막 뒤에서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강성 당원 중심의 노선, 즉 베버가 말한 진영의 ‘신념 윤리(ethic of ultimate ends)’를 한 치의 양보 없이 관철하고 있다. 찬사는 지도자를 향하지만, 정치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향하고 있다.
이성계가 군사력을 쥐고 있었듯, 정 대표는 권리당원의 비중을 극대화한 ‘1인 1표제’를 실질적 병권으로 삼아 김민석 국무총리로 기운 ‘명심’에 맞서고 있다. 이 힘의 대치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6월 말이라는 임계점에 닿았다. 로마 공화정 시대, 야전 사령관이었던 카이사르가 마주했던 루비콘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다. 중심부의 보편적 질서에 순응해 무장을 해제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병력을 유지한 채 새로운 권력의 룰을 세울 것인가를 묻는 실존적 결단의 선이었다.
연임 도전을 굳힌 정 대표는 6월 안에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출마를 공식화해야 한다. 지도자의 질서에 순응해 무장을 해제할 것인지, 독자 세력을 이끌고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널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우왕 앞에 엎드렸던 이성계가 칼을 버리지 않았듯, 정 대표 역시 자신이 구축한 제도적 룰과 1인 1표제로 결집한 지지층이라는 병력을 단 하나도 해산하지 않았다.
융성한 의전으로 명분을 쌓고 시간을 번 당권은 지금 정치적 도하(渡河)의 적기를 노리며 서 있다. 그가 대표직을 던지고 연임의 깃발을 올리는 순간, 칭송은 출정식 출사표의 언어로 변할 것이다. 진실을 비추는 것은 굽힌 허리의 각도가 아니라, 돌리지 않은 말머리의 방향이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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