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식에 울려 퍼진 한국어…K팝은 어떻게 ‘세계의 언어’가 됐나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2026. 6. 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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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국제 스포츠 축제도 한류 영향력에 주목
변방의 음악에서 세계인의 공통 언어로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멕시코·미국·캐나다가 공동 개최하는 대회다. 그래서 개막식도 나라별로 세 차례 열렸는데, 가장 먼저 열린 멕시코 개막식이 사실상 이번 월드컵 공식 개막식 같은 인상을 남겼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을 뿐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주제가 가운데 핵심 곡들이 이 무대에서 소개됐기 때문이다.

《K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을 부른 가수 이재(EJAE) ⓒAP연합

이번 대회의 대표 주제가는 라틴팝 스타 샤키라의 《다이 다이(Dai Dai)》지만, 멕시코 개막식의 클라이맥스는 또 다른 주제가인 《DNA》였다. 《다이 다이》가 앞부분에 소개돼 사전 축하 공연 같은 느낌을 줬다면, 《DNA》는 참가국 국기 입장 장면과 함께 공연되며 개막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을 대표하는 상징적 곡처럼 다뤄진 셈인데, 그 무대에서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이재(EJAE)가 《DNA》를 부른 것이다. 이재는 한국계 뮤지션으로, K팝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재의 국적은 미국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한국·미국 복수국적이라는 추정도 제기됐다. 국적이 어디든 중요한 것은 그가 K팝 스타라는 사실이다. 한국 대형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고, K팝 작곡가로 활동했으며, K팝을 전면에 내세운 《K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으로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재 자신도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여긴다고 밝혔고, 활동 과정에서도 꾸준히 한국적인 코드를 드러내 왔다.

북중미 월드컵을 상징하는 무대에 K팝 스타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더 비현실적인 장면은 노래 중간에 나왔다. 가사 속에 한국어가 등장한 것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개막식을 보던 시청자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또 넘어져도 난, 또다시 일어나. This is more than just a game, it's our DNA(이건 그냥 게임이 아냐. 우리의 DNA야)". 이 한국어 가사는 이재가 직접 작사했다고 한다. 세계를 상대로 하는 우리 노래에 영어 가사가 들어가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드컵 공식 주제가에 한국어가 등장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비현실적인 놀라움을 안겨준 것이다.

블랙핑크의 리사가 북중미 월드컵 미국 개막식 무대에 섰다. ⓒAFP연합

FIFA, 왜 K팝과 한국어 선택했나

아무리 이재가 《DNA》 제작에 참여했다고 해도, 타국이 개최하는 월드컵 공식 주제가에 한국어 가사를 넣는 일은 개인의 뜻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FIFA와 이번 월드컵 3개국 조직위원회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FIFA와 조직위의 목적은 분명하다. 주제가를 통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높이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나아가 월드컵과 축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축구 열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자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일도 중요하다. 동시에 젊은 세대를 새로운 팬으로 유입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와 한국어 가사가 승인을 받았다는 것은 FIFA와 조직위가 K팝 스타와 한국어를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요소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결국 K팝의 막강한 인기와 한류의 영향력을 고려해 K팝 스타와 한국어를 내세우는 것이 월드컵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북중미 월드컵 개막 공연을 보다가 한국어 가사를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이는 현재 세계 문화시장에서 K팝이 어느 정도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초대형 스타디움 무대에서도 전혀 존재감을 잃지 않은 이재의 모습과 가창력은 K팝의 굳건한 위상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 개막식에서는 블랙핑크의 리사가 브라질 가수 아니타, 나이지리아 아티스트 레마와 함께 또 다른 월드컵 주제가인 《골스(Goals)》를 공연했다. 리사는 태국인이지만 한국 걸그룹인 블랙핑크 멤버이기 때문에 당연히 K팝 스타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 결승전에는 방탄소년단(BTS)이 나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 이벤트로 꼽히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처럼, 이번 월드컵에서도 결승전 하프타임쇼가 처음 신설됐다. 미국에서 축구 열기를 끌어올리려는 FIFA와 조직위의 야심이 담긴 기획이다.

선수들의 몸이 식을 수 있고 잔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일부 축구팬의 우려에도 하프타임쇼를 강행하는 만큼, FIFA 입장에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무대다. 당연히 세계 최고의 스타들을 섭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 결과 BTS가 마돈나 등과 함께 공동 헤드라이너, 즉 간판 공연자로 선정됐다.

4년 전인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도 시청자들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BTS 멤버 정국이 등장해 공식 주제가 《드리머스》를 공연한 것이다. 당시에는 아랍권 스타와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행사의 주인인 개최국 스타보다 정국이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국가에서 열린 두 번의 월드컵에서 K팝 스타가 연속으로 핵심 무대를 맡게 된 것이다.

K팝, 이제 세계인의 팝으로

해외 스포츠 행사에서 K팝과 관련해 한국 시청자들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랐던 건 2018년이 시초였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갑자기 슈퍼주니어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슈퍼주니어는 단순히 얼굴만 비친 것이 아니라 《Sorry, Sorry》 《Mr. Simple》 등 대표 히트곡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사실상 폐막식의 핵심 공연자 역할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는 주최국 대표 가수가 중심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가수가 다른 나라 아시안게임 폐막식의 주연급 무대에 선 모습은 매우 낯설고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 사건은 K팝의 국제적 위상이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K팝이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국제적인 '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신호였던 셈이다.

2018년 아시안게임 당시만 해도 K팝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팝 문화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세계인의 팝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그런 K팝의 현재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물론 월드컵 주제가 자체가 K팝인 것은 아니다. 이재와 리사라는 K팝 뮤지션이 월드컵송 가창자로 참여한 사례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FIFA가 이들을 선택한 배경에는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K팝은 이제 영미 팝에 이어 지구촌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두 번째 공통 언어가 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 팝 가수만이 국제적 스타이고 한국 가수는 변방의 '딴따라'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월드컵 개막식에서 한국어 가사가 울려 퍼지는 장면 자체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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