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계산할 때 딴짓하는 남친…결혼하면 ‘엑셀 부부’ 될까요?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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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두면 집에서는 엄마가 치워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결혼해도 이런 거 안 치울 거야"라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좀 이따 치우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모든 일이 다 너한테 떠넘겨질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남자친구가 자기중심적인 데가 있고 오냐오냐 큰 것 같아서 제가 이러지 않으면 결혼해서 저 혼자 집안일과 육아까지 다 하는 독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따져봐야 할 것은 둘 중에 누가 더 계산적인지, 내가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과 남자친구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 중 어떤 게 맞는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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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안 보려는 듯한 남자친구에
‘결혼 맞나’ 싶지만 사랑의 허기도
‘손해 보는 느낌’ 다루는 방식이 중요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나이가 차니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결혼해도 괜찮은 사람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얘기하는 ‘엑셀 부부’가 저희 미래일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는 계산적입니다. 자기가 점심을 사면 저녁을 먹고 계산할 때 딴짓하며 제가 돈을 내길 기다립니다. 당연히 저도 얻어먹기만 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한번 샀으니 너도 한번 사라는 남자친구의 태도가 정 없게 느껴집니다. 선물을 사주고 생색도 잘 냅니다. 제 생일 선물로 굿즈를 사주면서 “이거 구하려고 내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몰라”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감동하고 ‘우쭈쭈’ 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눈에 보여서 고맙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가 알아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받은 만큼 베풀 텐데, 저에게 뭘 줄 때마다 아까워하는 것 같으니 저도 같이 인색해집니다. 결혼은 서로 맞춰가는 거라던데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남자친구는 오히려 제가 계산적이라고 합니다. 밥값을 제가 내게 하려고 뭉그적거린 적 없고, 선물도 생색을 내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 굿즈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어서 신기해서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남자친구가 다 마신 맥주 캔을 침대 옆에 그대로 뒀습니다. ‘이렇게 두면 집에서는 엄마가 치워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결혼해도 이런 거 안 치울 거야”라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좀 이따 치우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모든 일이 다 너한테 떠넘겨질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냐”고 하더군요. 남자친구 말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자기중심적인 데가 있고 오냐오냐 큰 것 같아서 제가 이러지 않으면 결혼해서 저 혼자 집안일과 육아까지 다 하는 독박이 될 것 같습니다. 민정화(가명·33)
파울 바츨라비크라는 오스트리아의 한 심리학자가 쓴 책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실제 거절을 당하기도 전에 이미 거절당한 사람이 되어 화를 내며 씩씩거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웃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봉변이겠지만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 보면 아마도 늘 거절을 예상하고 방어해야 할 만큼 거절로 인해 자존심 상하고 아팠던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화님이 결혼을 경계하는 데에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결혼 후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고, 시가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며느리로서만 살다가 자기 삶을 잃어버린 여성들의 한숨과 화병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을 테니까요. 지금도 꿈 많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결혼이 정화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됩니다.
그런데 경계심만큼이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허기도 커 보입니다. 정화님을 위해 손해도 볼 수 있는 사람, 주고 나서 바로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 넉넉한 사람을 원합니다. 뭔가를 줄 때마다 상대방이 장부를 들이미는 것 같으면 사랑이 거래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표현도 어려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바라는 모습이 또 정화님에게서 뭔가를 받아 가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아직 내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나눠 달라고 하니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일하고 돈 버는데 결혼하면 집안일도 더 해야 하고 남편 기분도 맞춰줘야 하나?’ 하는 생각은 이미 내 안이 텅 비어서 더 줄 게 없는데 언제까지 남을 채워주기만 해야 하나 허기진 한탄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제는 경계심이 오히려 허기를 채우기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뭔가를 줘도 숨은 요구와 의도를 찾아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뭘 또 내놓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은 내가 받은 사랑을 오염시킵니다. ‘피해의식이 있나’ 하는 정화님의 자기 의심도 혹시 내 안에 사랑이 들어오는 것을 번번이 막아서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기성찰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정화님의 입을 막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지도, 서운해하지도 말아야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성찰이 아니라 검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따져봐야 할 것은 둘 중에 누가 더 계산적인지, 내가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과 남자친구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 중 어떤 게 맞는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보다 손해 보는 느낌을 서로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한쪽이 서운함을 말했을 때 상대방은 억울함으로 맞서기만 하는지,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책망하는지, 그러면서 서로의 몫을 조정하는 대화가 계속 미뤄지지는 않는지, 그 지점을 함께 점검할 때 ‘엑셀 부부’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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