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없는 나라의 현실…다가올 ‘월세 공화국’ 청구서
저소득층일수록 커지는 부담…공공주택이 해법 될까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런던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A씨의 연봉은 2만4000파운드다. 우리 돈으로 약 4800만원, 월 400만원을 받는 셈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200만원 안팎이 매달 월세로 빠져나간다. '방 3개 화장실 2개'는 언감생심이다.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방 한 칸에 월급의 절반을 내고 있다.
영국 셰어하우스 중개업체 스페어룸이 지난해 내놓은 임대료 분석 결과를 재구성한 사례다. 직업별 평균 연봉과 런던 평균 방값을 비교한 이 분석은 영국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부동산 포털 라이트무브에 따르면 런던의 평균 월세는 이미 월 2736파운드, 우리 돈 약 540만원까지 치솟았다.
미국 뉴욕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의 중위 월세는 가구 중위 소득의 55%에 달했다. 특히 저소득층 밀집 지역인 브롱크스의 경우 이 비율이 81.6%까지 치솟았다. 100만원을 벌면 80만원 이상을 건물주에게 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의 지표는 주요국 대비 눈에 띄게 낮다. 국토교통부의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임차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전국 평균 15.8%, 수도권 18.4%였다. 주거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핵심 이유는 '전세' 제도에 있다. 목돈을 보증금으로 맡기는 대신 매달 지불하는 현금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가계 소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통계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것이다. 전세가 주거비 지출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점차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화'가 가속화할 경우, 국내 가구의 임대료 부담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세 제도가 없는 국가들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입자가 소득에서 월세로 지출하는 비중은 핀란드 31%, 노르웨이 29%, 스웨덴과 덴마크가 각각 28%에 이른다. 한국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월세화에 따른 주거비 부담은 저소득층에 집중될 전망이다. OECD 조사 결과를 보면, 고소득 가구는 소득의 일부만 주거비로 지출하지만 소득 하위 20% 가구는 대체로 소득의 20~40%를 월세에 쏟아붓고 있다. 칠레, 그리스, 뉴질랜드, 미국 등에서는 저소득 임차가구의 절반 이상이 소득의 4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며 만성적인 주거비 과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전세 소멸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가 꺼내든 대안은 '공공주택'이다. 월세화로 인해 늘어날 서민 주거비 부담을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확대로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임대의 완충 효과는 해외 사례에서 확인된다. 홍콩의 민간 임대시장은 1평 남짓한 이른바 '관짝집'에 살면서도 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내야 할 만큼 부담이 커 '월세 지옥'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홍콩 정부는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임대료가 통제되는 공공주택에 수용하는 방식으로 주거 부담을 떠받치고 있다. 홍콩대 비즈니스스쿨 분석에 따르면, 현재 홍콩은 전체 가구의 46.3%가 공공임대나 보조 자가주택에 거주한다. 중위소득 가구가 공공임대에 들어갈 경우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7~11% 수준으로 떨어진다.
싱가포르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임대가 아니라 '내 집 마련'을 통해서다. 싱가포르 통계청에 따르면, 거주 인구의 77%가 공공주택(HDB)에 사는데, 이들 대다수는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이다. 정부가 공공주택을 저렴하게 분양하고 보조금으로 매입을 돕는 구조여서, 싱가포르의 자가보유율은 2024년 90.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홍콩이 '공공임대'로, 싱가포르가 '공공분양'으로 주거비 상승의 방파제를 쌓은 것이다.
결국 관건은 속도와 규모다. 전세라는 강력한 주거비 방패가 사라지는 빈자리를 공공 주도 시스템이 얼마나 신속하고 촘촘하게 메울 수 있느냐가 정부 주거 정책의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