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무죄였네… '홍명보호 4-0 격파' 코트디부아르, 독일에게 경쟁력 보여줬다[초점]

이정철 기자 2026. 6.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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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디디에 드로그바의 나라로 유명한 코트디부아르가 '전차 군단' 독일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제 드로그바의 창 대신 견고한 빗장수비로 독일을 괴롭혔다.

ⓒ연합뉴스 AP

코트디부아르는 21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5시 캐나다 토론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독일과의 맞대결에서 1–2로 졌다.

코트디부아르는 승점 3(골득실 0)을 기록하며 E조 2위를 유지했다. 반면 독일은 승점 6(골득실 7)을 작성하며 조 1위에 위치했다.

코트디부아르는 드로그바의 나라로 유명하다. 드로그바는 1978년생 코트디부아르 국적의 전 축구선수인데 주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2번이나 거머쥐었다. 특히 첼시 구단 역사상 첫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및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을 이끌었다.

더불어 조국의 전쟁을 멈춘 사나이로 명성을 날렸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던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둘로 쪼개져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코트디부아르 방송에서 대표팀 인터뷰를 하던 중 드로그바가 내전을 그만두자고 연설을 하면서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서로를 용서하고 무기를 내려놓자"고 호소했다.

이후 내전의 주체였던 두 집단 간에는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2007년 3월 양 집단이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평화 조약에 서명하면서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은 끝났다. 내전 종식의 다른 이유도 있었으나 드로그바의 공로도 매우 컸다. 이로 인해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의 신처럼 받아들여졌다.

코트디부아르는 드로그바의 전성기 시절 그를 앞세운 파괴적인 공격력으로 상대를 눌렀다. 하지만 드로그바의 은퇴 이후 한동안 코트디부아르는 팀 색깔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연합뉴스 AP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다르다. 코트디부아르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았다. 점유율이 높지도 않은 상태에서 두 줄 빗장수비를 걸고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조별리그 1차전 에콰도르부터 1-0으로 이겼다.

독일에게도 코트디부아르의 수비 실력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촘촘히 세워진 두줄수비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7골을 퍼부은 독일 공격수들도 그물망처럼 묶었다. 빠른 공수전환을 통한 역습도 날카로웠다. 전반 30분 역습 상황에서 박스 중앙에 포진한 프랑크 케시에가 정확한 오른발 슈팅으로 독일의 골네트를 흔들기도 했다.

물론 코트디부아르는 독일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후반 23분과 추가 시간 독일 데니스 운다브의 왼발 슈팅을 막지 못했다. 이로 인해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 두 장면으로 코트디부아르의 수비력을 폄하하기에는 그들은 이번 대회 내내 훌륭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드로그바의 나라'였던 코트디부아르. 드로그바의 은퇴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지난 3월 홍명보호를 4-0으로 누르더니, 이번 월드컵에서 두줄 빗장수비를 앞세워 드로그바 시대에도 해내지 못했던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코트디부아르다.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2jch42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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