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왜 길 아닌 수풀로 향했나… 주왕산 초등생 사망 46시간의 흔적 [사건플러스]
등산 후 46시간 지나 주검으로 발견
휴대폰 없이 홀로 산에 올랐다 실종
정해진 길 놔두고 깊은 수풀로 빠져
용변 급해 들어갔다 길 잃을 수도
장례 마쳤지만 경찰 수사 종결 안 돼

지난달 10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와 119에는 산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사라진 이는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주왕산을 찾은 초등학교 6학년 강모(11)군이었다. 강군은 어머니에게 "조금만 올라갔다 오겠다"고 말한 뒤 홀로 산에 올랐지만, 이틀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강군이 발견된 지 꼭 한 달이 된 12일 주왕산을 올랐다. 강군은 왜 가족이 머물던 곳을 떠나 홀로 험한 주봉 코스를 택했고, 또 왜 지정 탐방로를 벗어나 수풀 속으로 향했을까.
주왕산의 지정 탐방로는 사찰 대전사를 지나 기암교에서 시작된다. 강군과 가족도 실종 당일 대전사에 잠시 머문 뒤 기암교로 향했다.
기암교는 주왕굴(1.5㎞), 용추폭포(1.9㎞), 주봉(2㎞), 용연폭포(3.1㎞) 등 4개 코스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주왕굴과 용추폭포, 용연폭포 방면은 기암교를 건너자마자 시작된다. 안내 표지판에 '무장애 탐방로'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길이 평탄하고 경치도 뛰어나 가족 단위 탐방객이 많이 찾는다.
반면 주봉 코스는 기암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해발 722m인 주봉은 초입부터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험하다. 등산 애호가가 주로 찾는 코스다. 주왕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도 "주봉 코스는 좁고 울창한 산길을 이동하기 때문에 뱀과 같은 야생 동물을 조심해야 한다", "암벽 구간과 낙뢰 위험이 있어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탐방을 금지한다"는 안내가 적혀 있다.
하지만 강군은 주봉을 택했다. 지난해 10월 가족과 함께 주왕산을 찾았을 때도 어머니와 주봉에 오르려 했지만 힘들어 중도에 내려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휴대폰도 없이 500㎖ 생수 한 병만 들고 홀로 산에 올랐다. 당시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용추폭포 방향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기암교 인근에서 휴식을 취했다.

12일 직접 걸어본 주봉 코스는 초입부터 만만치 않았다. 경사가 가팔라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도 금세 땀이 났다. 등산로 옆으로는 비탈과 낭떠러지가 이어져 추락 위험도 컸다. 군데군데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대부분 구간은 암석과 흙, 돌이 뒤섞인 자연 그대로의 산길이었다. 수풀이 빽빽하게 우거져 앞뒤 사람과 조금만 떨어져도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린 초등학생이 혼자 오르기에는 위험해 보인다.
실종 당일 강군을 봤다는 등산객들도 "아이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고 기억했다. 한 여성 등산객은 "주봉을 200m 정도 남긴 쉼터에서 지쳐 쉬고 있는 아이를 봤다"며 "주봉을 갔다 오는 길에도 지친 표정 그대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강군은 결국 주봉 정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틀 뒤 시신으로 발견된 장소가 주봉을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암교에서 주봉까지 거리는 2~2.3㎞. 성인 기준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강군의 나이를 고려하면 1시간 40분에서 2시간 가까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힘겹게 주봉에 오른 강군은 출발지였던 기암교로 되돌아가지 않고 계속 산길을 걸었다. 기암교에서 시작하는 4개 탐방 코스는 서로 연결돼 있다. 주봉을 지나면 칼등고개를 거쳐 용추폭포 방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거리가 6.5㎞쯤으로, 주봉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것보다 2, 3시간 더 걸린다.
실종 당일 강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직접 찾아 나섰다. 주봉 코스를 오르내리며 행적을 쫓던 그는 오후 4시 10분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군이 가족과 헤어진 지 4시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는 경찰, 소방과 함께 탐방로를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강군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와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부모도 경찰에 "대구 집에 두고 와 휴대폰이 없다"고 진술했다.
강군을 찾기 위해 인력 350여 명과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 헬기, 구조견 등이 투입됐다. 야간 수색도 이어졌지만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강군은 실종 사흘째인 지난달 12일 오전 10시 13분 산속 깊은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과학수사대 소속 수색견이 처음 찾아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주봉에서 기암교 반대 방향 탐방로를 따라 100m 정도 이동한 뒤 수직으로 400m가량 아래에 있는 계곡이었다. 등산로와 연결된 길은 없었고, 수풀로 뒤덮인 급경사 산비탈이 이어졌다. 인력 350여 명이 대규모 수색을 벌이고도 강군을 쉽게 찾지 못한 이유다.
강군은 계곡 바닥에 반듯이 누운 상태였다. 경찰은 수풀 속을 헤매다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시를 진행한 의사는 몸 곳곳에서 골절을 확인하고 '추락에 의한 손상'이라는 예비 소견을 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부검 결과 "골절 등 추락에 의한 손상으로 볼 수 있는 상처들을 확인했다"며 '추락사 추정'이라는 예비 소견을 밝혔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는 강군이 용변 등을 위해 탐방로를 벗어났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주봉에서 100m가량 지난 지점의 산비탈은 탐방로와 가까운 곳에서는 평지에 가깝게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급경사 지형이 이어진다. 공원사무소 관계자는 "아이가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가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군이 발견된 다음 날에는 인근 산비탈에서 안경과 생수병도 발견됐다. 산에 오를 때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은 비어 있었다고 한다.

사고 이후 국립공원공단은 전국 국립공원의 표지판과 난간, 구급함 등 안전시설을 점검했다.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도 휴대폰이 없는 탐방객에게 위치 추적기를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강군의 장례는 이미 치러졌지만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과수는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약독물 검사 등 정밀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최종 부검 결과는 1, 2개월 뒤 나올 전망이다. 청송경찰서 관계자는 "강군의 실종이나 사망과 관련해 현재까지 특별한 범죄 혐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국과수 최종 부검 결과에 따라 수사 종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송=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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