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후공정 만으로는 부족하다 ‘팹’ 시설도 요구하는 호남… 용인은 반발

반진욱 2026. 6. 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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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일대 후공정 반도체 투자 유력
지역 정계에선 ‘팹’이 필요하단 주장 나와
새만금 내세우는 전북도 반도체 유치 나서
전력 풍부하지만 용수, 인재 입장에선 불리

호남 지역 정계와 관가를 중심으로 반도체 공장을 호남 지역에 신설하는 계획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투자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해진 것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들도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가장 유력한 안으로는 전남광주 일대에 ‘패키징(후공정)’ 신규 공장을 짓는 것이 거론되고 있다. 후공정은 반도체 전공정 대비 용수와 전력 소모가 덜해 입지 부담이 덜하다. 그러나, 지역 정계에선 후공정을 넘어 전공정을 맡는 ‘팹’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고용, 경제효과 유발을 위해선 규모가 큰 전공정 유치가 필수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후공정과 달리 전공정은 전력과 용수, 인재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하는 탓에 섣불리 투자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공정 뿐만 아니라 전공정을 포함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호남 일대에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뉴시스
◆후공정만으로는 부족… 전공정 유치나선 전남광주

19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반도체산업클러스터”를 만들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최고경영진이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팹을 통합광주로 보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여당 인사인 송영길 의원 역시 전남·광주 지역 대기업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곧 준비될 것”이라며 “김용범 정책실장과도 적극적으로 코칭하고 있으니 기다려보면 된다”고 언급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번 정치권의 주장은 기존의 ‘후공정 유치’를 넘어 전공정까지 요구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초창기 호남 반도체 투자설이 이야기 됐을 때는 후공정 공장을 짓는 것이 유력했다. 반도체는 원자재인 웨이퍼에 전기가 지나가는 회로를 입히는 전공정과, 반도체 소자를 전자장비 용도에 맞게 조립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보통 전공정을 담당하는 곳을 ‘팹’이라 부르고 후공정을 맡는 공장을 ‘패키징 공장’이라 부른다. 이중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하는 과정은 전공정이다. 웨이퍼를 끊임없이 깎고 씻어야 하기 때문에 전기와 물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반면 패키징은 전공정에 대비해선 전력, 용수 부담이 덜하다. 호남 지역에 후공정이 거론됐던 점도 입지 요건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한몫했다.

그러나 호남지역 지자체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 분위기다. 고용효과와 경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선 반드시 팹 유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패키징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핵심 제조공정인 전공정까지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분위기다. 강위원 전남도 경제부지사는 지난 9일 SNS를 통해 “후공정 패키징을 넘어 대규모 전공정 팹 유치까지 기어이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뿐만 아니라 새만금을 앞세운 전북까지 반도체 유치를 강하게 원하는 분위기다. 지역에선 새만금 지역에 대규모 팹 또는 패키징 공장을 짓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공정은 입지 한계 뚜렷…용인 반발도 무시 못해

다만 전공정 팹 공장이 호남에 바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말했듯 전공정은 입지 요건이 상당히 까다로워서다. 업계에선 흔히 팹의 3요소로 전력과 용수, 인재를 뽑는다. 24시간 내내 공장을 돌려야하는만큼 막대한 전력이 끊임없이 공급돼야 한다. 또 웨이퍼를 씻는 과정에서 사용할 ‘초순수’를 공급할 용수가 풍부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첨단 공정을 관리하는 인재도 필수다. 현재 이 사안을 그나마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은 수도권 뿐이다. 비록 전력을 타 지역에서 끌어오고는 있지만, 송전이라도 가능한 전력과 달리 용수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옆에 풍부한 수량을 갖춘 담수가 있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반도체 공장을 감당할 담수량을 갖춘 곳은 한강수계 정도다. 전남 지역에 영산강이 있지만, 한강 수계 역할을 대체하긴 어렵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해수담수화 역시 담수화 과정에서 소요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고려하면 무리가 있다.

물류는 후공정 투자설이 나올 때부터 제기된 문제다. 반도체 공장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밀집한 이유는 수출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는 습도에 약하고 민감한 상품이기 때문에 배로는 수출이 안된다. 항공 수출만 가능하다. 고객과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선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거대 공항이 필요한데 이는 인천국제공항이 유일하다. 민감한 반도체를 운송하기 위해선 특수 차량이 필요하다. 거리가 길어지면 물류비가 치솟는다. 수도권에서 호남을 따라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선이 나오면 기업 입장에선 현재보다 물류비가 급등할 수 밖에 없다.

반도체 클러스터 지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반발도 무시하기 힘들다. 반도체 팹은 투자할 때 수십조의 금액이 들어간다. 전공정을 호남에 지으려면 결국 용인에 조성중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옮겨야 한다. 아무리 돈을 쓸어담는 반도체 기업이라도 용인에 이어 또 호남에 팹을 짓기는 힘들다. 

용인에선 이미 호남 반도체 투자설을 두고 강한 반감이 형성되고 있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18일 SNS에 호남 전공정 투자 요구를 두고 “지방선거 과정에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프로젝트를 좌초시키려는 시도가 선거 이후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실제 그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국가가 추진하는 핵심 산업 프로젝트”라며 “전력 공급 문제 역시 정부와 관계기관이 이미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인 사안인데, 이를 근거로 사업 자체를 흔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용인 지역 전력이 부족해, 전력이 풍부한 호남으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특히 이 시장은 반도체 투자를 요구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주장이 단순한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새 정부와 여당의 정책 기조를 반영한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의 생각이라면 정치적 주장으로 끝날 수 있지만, 만약 정권 차원에서 용인 국가산단 계획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라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며 “용인특례시민과 경기 남부 주민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진욱 기자 halfn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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