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 책임, ‘진짜 어른’을 그려낸 김무열
“좋은 어른은 결국 책임지는 사람”
(시사저널=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김무열은 업계가 먼저 알아본 배우였다. 쉽지 않은 캐릭터를 과장 없이 소화하고,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 강렬한 악역도, 묵직한 정의감의 인물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감독들은 그를 찾았고, 함께 작업한 배우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김무열은 참 연기를 잘한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작품 속에 스며드는 쪽을 택해온 배우. 김무열은 그렇게 24년의 시간을 쌓아왔다.
2002년 뮤지컬 《짱따》로 데뷔한 그는 무대에서 시작해 스크린과 브라운관, OTT를 오가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은교》의 서지우, 《연평해전》의 윤영하 소령, 《악인전》의 정태석, 《소년심판》의 차태주, 《범죄도시4》의 백창기까지. 작품도 장르도 달랐지만 김무열은 늘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스타성으로 기억되고, 누군가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김무열은 후자에 가까운 배우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그런 김무열이 대중과 가장 강렬하게 만난 작품이다. 공개 직후 글로벌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고, 그가 연기한 교권보호국 조사관 나화진은 단숨에 인생 캐릭터가 됐다. 통쾌한 액션과 선 굵은 메시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김무열은 작품의 성공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냈다. 시청자들이 열광한 나화진 역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라기보다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연기 자체가 좋다"는 것이었다. 무심하게 건넨 그 짧은 문장에는 배우 김무열이 걸어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특별한 수식도, 거창한 목표도 없었다. 다만 연기가 좋았고, 그래서 24년 동안 한길을 걸어왔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참교육》의 성공과 좋은 어른의 조건, 아버지가 된 뒤 달라진 시선, 그리고 배우로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개 직후 글로벌 1위에 올랐다.
"감독님과 '우리 어떡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웃음). 처음에는 기쁨보다 당혹감이 더 컸다. 큰 사랑을 받다 보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책임감도 생겼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은 한다."
시청자들은 나화진을 일종의 히어로처럼 받아들인다.
"분명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나화진을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기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힘을 쓰는 것보다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일이 더 어렵다. 나화진은 늘 그 책임을 떠안으려는 사람이다."
작품은 결국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어른은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본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면 그 결과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말에 책임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도 생각이 많아졌을 것 같다.
"많이 달라졌다. 작품을 통해 교육 현장의 여러 단면을 보게 됐고 예전보다 어떤 문제를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졌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됐다. 이전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된 점은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10화다. 나화진은 약혼녀 가윤의 죽음 때문에 이 사건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래서 사적인 감정 때문에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지만 결국 규철을 용서한다. 나는 그 과정이 좋았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다시 기회를 주고 믿어주는 일이 더 어렵다. '규철아, 그러면 안 돼. 우리 다시 해보자'라는 대사에 작품이 전하고자 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나.
"안양예고 시절 선생님 한 분이 떠오른다. 늘 대본을 공책에 한 장씩 붙여오라고 하셨는데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배우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작품은 결국 그런 사소한 태도들이 모여 완성된다는 것을. 그 선생님은 기술보다 태도를 먼저 가르쳐주신 분이었다."
배우 김무열에게 가장 냉정한 평가자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아내다(웃음). 늘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번에는 보자마자 '재밌다. 잘될 것 같다'고 하더라. 원래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라 더 기억에 남았다. 가까운 사람의 진심 어린 한마디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뒤늦은 재평가라는 말도 나온다.
"조금 쑥스럽다(웃음). 나는 늘 캐스팅 1순위였던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업계에서 흔하다. 많은 분들이 새롭게 봐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다른 배우가 된 건 아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 작품씩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다."
배우 김무열에게 《참교육》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배우 생활을 하면서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특별한 각오로 시작한 작품은 아니었다. 연기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 시작한 일이니까. 그래서 지금의 결과가 더 감사하게 다가온다. 많은 분들이 우리의 진심을 알아봐주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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