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프로 생활 마침표, 박지훈의 마지막 인사 “시래와 같이 뛰어보고 싶었는데…”

2026 FA 협상에서 총 20명이 계약을 맺지 못했다. 9명은 계약 미체결로 분류돼 향후 FA 재등록 여지를 남겼지만, 11명은 은퇴선수로 공시되며 코트를 떠났다. 박지훈도 이 가운데 1명이었다.
박지훈은 점프볼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쉽기도, 후련하기도 하다. 지난 시즌에 출전 기회가 많이 줄어들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FA 공시 후 기대하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퇴 공시 후 며칠 동안 갑갑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박지훈은 명지대 시절 날카로운 돌파력, 속공 가담 능력을 보여준 포워드였다. 명지대는 2011 농구대잔치에서 김시래와 박지훈을 앞세워 한양대, 연세대, 건국대를 차례로 무너뜨리며 결승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시래가 ‘시래대잔치’라는 별명을 얻은 대회였다.
박지훈은 “당시 (김)시래는 정말 대단했다. 상무 형들도 시래의 돌파를 막지 못했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회지만, 프로에서는 시래와 한 팀에서 뛰지 못한 게 아쉽다. 데뷔 후에도 언젠가 같은 팀에서 뛰어보자는 대화를 자주 나눴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은퇴와 관련해선 별다른 얘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 다음 인생을 응원해 주는 사이다”라고 말했다.

박지훈은 쟁쟁한 동기들 가운데 최부경(620경기)-최현민(533경기)-차바위(531경기)-김시래(530경기)에 이어 5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저니맨이었지만 꾸준히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그만큼 롤플레이어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특히 2019-2020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은 이후 29경기 평균 27분 39초 동안 6.4점 3점슛 1개 2.8리바운드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유재학 전 현대모비스 감독도 당시 “(박)지훈이의 장점은 달리는 농구에 최적화됐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 때나 정적인 농구를 할 때 투입해 분위기를 전환했다”라는 평가를 남겼다.
박지훈은 “사실 프로 데뷔 직후에는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상무에 가기 전(2015-2016시즌) 부상 선수가 많아지며 기회가 주어졌고, 그때 농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많은 기회(35경기)를 받은 게 전환점이 됐고, 이를 계기로 상무에서도 몸을 열심히 만들었다. 제대 후에도 줄곧 몸 관리에 열심히 임했다”라고 돌아봤다.
여러 팀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박지훈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즌은 제대 후 DB로 돌아온 2017-2018시즌이었다. 당시 DB는 시즌 개막 전까지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디온테 버튼-두경민 콤비를 앞세워 정규시즌 우승이라는 이변을 일으켰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았던 박지훈의 농구선수 인생은 27년 만에 막을 내렸다. 프로무대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던 건 아니지만, 재능과 더불어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14년 동안 살아남아 442경기를 소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박지훈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농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싶다”라며 프로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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