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법인 계좌 동결? — 트럼프가 한국 기업에 던지는 경고 [김앤배의 X파일 - 미국법 이기는 법]
이 행정명령은 1970년 제정된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을 근거로 금융기관의 고객확인의무(KYC)를 대폭 강화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고객의 이민 신분과 체류 자격을 금융 리스크 평가의 공식 요소로 편입시킨다. 쉽게 말해, 영주권자가 아닌 비자 체류자라는 사실 자체가 은행 시스템에서 ‘주의’ 표시가 붙는 것이다. 둘째, 사회보장번호(SSN) 대신 개인납세자번호(ITIN)를 사용한 계좌 개설 및 금융 거래를 고위험 활동으로 분류한다. ITIN은 합법적 세금 신고를 위해 발급되는 번호임에도, 이제는 그 자체가 금융기관의 경계 대상이 된 셈이다. 셋째, 실소유주를 은닉하기 위한 유령회사(shell company) 설립, 반복적 현금 인출, 장부 외 임금 지급 등을 의심 거래 징후로 명시한다.
더 일상적인 상황도 문제가 된다. E-2 투자비자로 LA에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박 사장의 경우, 비자 갱신 시점이 다가오면 은행이 자동으로 리스크 등급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비자가 만료되기 3개월 전부터 신용카드 한도가 축소되거나, 대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행정명령은 금융기관에 ‘확대경’을 하나 더 쥐어준 것과 같다. 기존에는 자금세탁 여부만 들여다보던 은행이, 이제는 ‘누가 이 돈의 주인인가’를 넘어 ‘이 사람이 여기 있을 자격이 있는가’까지 살피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이 즉시 점검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내 법인 및 계열사의 실소유주 신고(BOI Report)가 최신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2024년부터 시행된 기업투명성법(Corporate Transparency Act)상의 신고 의무와 이번 행정명령이 결합되면, 신고 누락이 계좌 폐쇄의 직접적 사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자문하는 한 중견기업은 미국 자회사 설립 후 BOI 신고를 누락한 채 2년간 운영하다가, 최근 거래 은행의 컴플라이언스 심사에서 적발되어 30일 내 소명하지 않으면 계좌를 폐쇄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둘째, 주재원 및 현지 채용 직원의 비자 상태와 취업 허가 유효성을 금융기관 제출 서류 관점에서 재정비해야 한다. 인사팀의 비자 관리 파일과 재무팀의 은행 제출 서류가 따로 놀고 있다면, 지금이 이를 통합할 적기다. 셋째, ITIN으로 운영 중인 거래 계좌가 있다면 SSN 기반 전환 가능 여부를 즉시 검토해야 한다.
한국 기업에 대한 조언은 명확하다. 첫째, 미국 현지 금융 컴플라이언스 전문 법률 자문을 통해 계좌 구조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문제가 터진 후 변호사를 찾는 것은, 화재 후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다. 둘째, 체류 자격 관련 서류를 상시 갱신 가능한 체계로 구축하라. 비자 만료 90일 전 자동 알림 시스템을 금융 서류 관리와 연동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규제 환경의 변화를 단순한 이민 정책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기업 재무 운영의 연속성(business continuity)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한 서류 가방은 한층 두꺼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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