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유전자 탓?… 비밀은 단백질이야
보고 듣고 소화하고 치유하고…
단백질, 생명의 모든 기능 수행
실제 생명체 구축·운영하는 셈
GPS 없이 목적지 찾는 꼬까울새
독뿜는 청자고둥 등 ‘맞춤형’ 분비
알츠하이머는 ‘비정상 단백질’ 탓
“치료용 개발 노력… 인류 변화 예고”
춤추는 단백질/ 샤하르 S 리즈크, 매기 M 핑크/ 홍지연 옮김/ 흐름출판/ 2만5000원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 소식은 과학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수상의 영예는 전통적인 생화학자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시스템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애나대 생화학부 교수인 샤하르 S 리즈크와 매기 M 핑크가 함께 쓴 ‘춤추는 단백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단백질이 무엇이며, 왜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은 생명과학의 오래된 통념에도 도전장을 내민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은 유전자 중심의 관점에 익숙했다. DNA가 생명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서사는 강력한 설득력을 지녀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유전자는 단지 정보를 담은 청사진일 뿐이라고 말한다. 설계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제 건물을 짓는 것은 기술자다. 생명이라는 건물을 실제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존재가 바로 단백질이라는 설명이다.

홍해에 서식하는 모세가자미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 물고기는 상어의 공격을 받으면 ‘파르닥신’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 상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도망친다. 단백질은 단순히 몸속에서 작동하는 분자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청자고둥의 독소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청자고둥은 먹잇감을 마비시키기 위해 수백 종의 독소 단백질을 사용한다. 그중 일부는 물고기의 인슐린과 비슷한 구조를 지녀 혈당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바로 이 독소를 이용해 강력한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다. 독이 약이 되는 역설 속에서 단백질의 무한한 가능성이 드러난다.
저자들은 단백질이 개체의 생존을 넘어 지구의 역사까지 바꾸었다고 말한다. 약 3억7000만년 전 식물들이 ‘리그닌’이라는 단단한 물질을 만들어내면서 거대한 숲이 형성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분해할 효소 단백질이 충분히 진화하지 못해 나무들이 썩지 않은 채 쌓였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탄소가 땅속에 묻혔고, 훗날 석탄과 화석연료가 됐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원 상당수가 단백질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질병에 대한 설명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알츠하이머병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같은 퇴행성 질환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이다.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할 단백질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하면 세포가 손상되고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 특히 저자 매기 핑크가 ALS를 앓았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은 과학적 설명에 인간적 온기를 더한다. 단백질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미래다.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인류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하는 단백질,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단백질, 항생제 내성균을 제거하는 단백질,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삼는 치료용 단백질이 연구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은 물론 지구 생태계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이라는 작은 존재를 통해 생명의 기원과 진화, 질병과 치료, 그리고 인류의 미래까지 조망한 유용한 과학교양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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